첫 ‘4·3 호적 바로잡기’, 구제문턱 낮춰야
첫 ‘4·3 호적 바로잡기’, 구제문턱 낮춰야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9.07.31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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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戶籍)은 호주를 중심으로 호주와 가족과의 관계, 본적지, 성명, 생년월일 등 신분에 관한 사항을 기록한 공적인 장부를 말한다. 우리사회에서는 흔히 ‘호적을 판다’는 말을 곳잘 사용한다. 이는 가족관계증명서나 등본에 있는 가족 구성원 이름을 뺀다는 의미로, 일종의 가족관계를 단절하는 극단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때문에 호적은 개인의 정체성을 단적으로 상징하는 단어다. 제주는 이른바 대한민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으로 상징되는 4·3사건이라는 소용돌이를 피할 수 없었다. 제주 4·3의 생채기는 70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진다.

4·3은 이웃 간 나아가 이념 간 갈등을 넘어 가족 구성원 많은 후유증을 만들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자식이 한 둘이 아니다. 때문에 적지 않은 도민이 양자 또는 양녀라는 이름으로 친척의 자식으로 호적을 올려 숨죽인 채 살아야 했다. 이런 가운데 제주4‧3으로 아버지를 잃고 친척의 딸로 살아온 4‧3 희생자 유족이 소송을 통해 70년 만에 호적을 바로잡았다. 첫 사례다.

오 모씨(70‧여)는 2014년부터 호적 정정을 위한 소송을 제기한 끝에 최근 목표를 이뤘다. 성산읍 출신인 오 씨는 갓난아기일 때 아버지가 4·3사건으로 희생되자 5촌 삼촌의 호적부에 올랐고 지금까지 사실과 다른 가족관계 기록을 안고 살았다. 오씨는 친자관계 부존재 확인, 친자 확인, 가족관계 등록부 정정 등을 위한 소송을 거듭한 끝에 2017년 7월 잘못된 출생의 기록을 바로잡는 소송을 마무리했다. 오 씨는 ‘바로 된 주민등록증’ 발급을 앞두고 있다. 오 씨처럼 4‧3 으로 인한 양자·양녀는 4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호적 정정은 호적의 기재가 법률상 무효이거나 그 기재에 착오나 오류 등이 있을 때 이를 바로잡아 진정한 신분 관계와 합치시키는 것이다. 개인이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뿌리를 놔둔 채 ‘다른 사람’으로 사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이번 오 씨의 호적 정정은 개인이 존엄성 확보와 사회정의를 위해서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4‧3 당시 부모 희생으로 양자‧양녀가 된 유족들의 호적 정정은 제주4‧3 미완의 과제 중 하나다. 호적 정정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일반인이 직접 하기에는 적지 않은 시간과 경제적 부담이 따른다. 따라서 지방정부인 제주도를 비롯한 관련기관은 오 씨처럼 억울한 도민이 더는 없도록 ‘호적구제’의 문턱을 낮추는데 적극 나서야 한다.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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