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흑우의 기원과 역사
제주흑우의 기원과 역사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7.28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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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철.제주도 축산진흥원

제주흑우는 유럽원우와 인도원우 혼혈종으로 중국과 몽골을 거쳐 한반도로 유입되었으며, 다른 품종과 교배되지 않고 동종번식을 하면서 사육되었다.

고려 충렬왕 3(1277) 몽골지역에서 소가 도입되며, 1702년 이형상 목사에 의해 제작된 탐라순력도에서 흑우를 점검하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세종실록에서 제주흑우는 고기 맛(상강육이 특히 발달)이 우수하여 고려 시대 이후 삼명일(임금님 생신날, 동지, 정월 초하루)에 진상품으로 공출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진상하기 위해서 선별된 흑우들은 제주목 관아인 관덕정 앞에서 선박으로 운반되어 해남, 강진, 영암 등으로 이동하였다.

조선 숙종 28(1702)에 이형상 제주목사가 도내 전역을 순시하면서 제작한 탐라순력도에 사육 및 점검 결과가 기록되어 있다. 이형상 목사의 저서인 남환박물에 제주흑우 사육기록과 매년 20마리의 진상 기록이 있다.

원나라 지배 이전에는 농경과 자급자족 목적으로 소가 사육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제주에서의 초식가축은 연중방목 중심으로 사육되었고, 방목 사육기인 4월에서 10월에는 풀이 풍성하여 사육에 문제가 없었으나, 한겨울과 이른 봄에 풀이 고사한 때에는 가축들이 기아로 죽는 경우가 있었다.

조선 시대에 가축 관리를 맡은 목자들은 가축의 분실되거나 폐사하였을 때는 변상 조치를 했기 때문에 겨울철에도 고사초(마른 풀)를 찾아 먹이고, 허약하거나 상태가 좋지 않은 환축에게는 가을에 준비해 둔 야건초 등을 추가로 급여하면서 힘겨운 겨울을 나야 했다. 이렇게 민가에서는 많은 소를 관리하였으며, 관에서는 진상에 충당할 목적으로 우적부에 민가의 소를 기록하여 관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시대에 국영목장에서는 양호한 수컷을 선발해서 암컷 집단과 혼합 방목했기 때문에 계획교배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제주흑우는 국가 지정 천연기념물 제546(2013. 7. 22.)로 지정되어 축산진흥원에서 순수 혈통 보존 및 개량·증식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 지역 유전자원의 안전한 보존과 활용으로 제주 고유의 브랜드로 육성하여 농가 소득을 향상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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