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전정가위를 잡으며...
다시 전정가위를 잡으며...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6.03.10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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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의회는 2일 전국 기초, 광역의회 의장단에 제주산 감귤 사주기 운동에 적극 참여해 줄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시의회는 이 공문에서 ‘과잉생산 된 감귤이 잘 처리될 수 있도록 동지의원들이 제주산 감귤 선물하기, 차나 음료수 대신 감귤로 손님 맞이하기 등 감귤 사주기에 적극 나서달라’고 당부했다” (1992년 10월 3일). “바르게살기운동제주도협의회는 올해 감귤 대풍으로 농가들이 제값을 받지 못하는 등 어려움을 겪자 전국 바르게살기운동협회 회원을 대상으로 제주감귤사주기 운동을 전개, 23일까지 10kg들이 3860상자, 15kg 들이 8271상자를 판매했다.” (1994년 12월 24일). 24년전과 22년전 제주감귤 감귤산업의 실상을 보여준 기사의 일부다. 당시 감귤가격이 폭락하면서 지방의회와 제주지역 사회단체들이 어려움에 처한 감귤농가 돕기에 나선 모습이다. 농산물이건 공산품이건 수요보다 많은 물량이 공급될 때 가격이 하락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 때 감귤산업의 숙명과도 같은 목표는 ‘적정생산’이었다. 그래서 감귤원 폐원사업과 간벌사업이 대대적으로 전개됐고, 이 과정에 수많은 예산이 투입됐다.

#2015년산 제주감귤산업이 맥 못 추고 주저 앉았다. 이는 현재 진행형이다. 과잉생산 때문이 아니다. 2015년산 상품 노지감귤 도외 출하량은 30만t을 밑돌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노지감귤 상품 도외 출하량이 30만t을 밑돈 것은 1997년 제주도감귤출하연합회가 설립된 이후 처음이다. 그런데도 2015년산 감귤 가격은 바닥세를 면치 못했다. 그 결과 감귤 조수입은 3000억원을 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지방정부인 제주도와 생산자단체인 농·감협은 물론 감귤농가들까지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많은 감귤농가는 참담한 실상을 직접 접하면서 공포감마저 느꼈다. 현재까지는 기상악화와 경기침체 등 다양한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추측뿐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발전 가능성은 있느냐’ 하는 점이다. 2014년도산에 이어 2년째 감귤산업이 곤두박질했다. 2013년도산 감귤 조수입은 5000억원을 넘었다. 1~2년 새 반 토막이 났다. 이 과정에서 제주도는 감귤가격 추가하락을 막기 위해 예산을 풀어 감귤을 산지서 폐기하는 이른바 ‘시장격리’라는 사실상의 극약처방까지 동원했다. 20여 년 전엔 과잉생산으로 감귤 값이 폭락하더니, 이번에는 생산량이 크게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곤두박질 친 것이다.

#최근 제주도 농어업인회관에서 열린 ‘감귤산업의 내일을 묻다’라는 주제의 한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고품질 감귤이 생산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심지어 서울 가락시장의 한 경매사는 “감귤산업 발전을 위해선 농가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고품질의 감귤을 출하해 시장에서 평가받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혁구습(革舊習)’이라는 말이 있다. 율곡 이이 선생이 지은 ‘격몽요설’에 나오는 것으로, 율곡은 ‘구습이야 말로 목표를 성취하는데 가장 장애가 된다’고 지적했다. 오늘 제주 감귤산업이 이처럼 된 것은 목표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1차 책임은 농가에 있다. 고품질이라는 공동의 목표가 분명한데도,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어 그 목표를 망각했다. 농·감협을 외면했다. 손쉬운 중간상인에 의존하는 행태가 고착화 됐다. 그 결과 유통과정에서 온갖 문제가 발생하고, 나아가 농·감협의 설 자리까지 비좁게 만들었다. 손해 볼 때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함께 가자는 ‘대동(大同)의 정신’이 사라졌다. 건강한 감귤산업은 감귤나무에서만 만들어 지는 게 아니다. 농가 스스로가 주체가 돼 함께 만드는 것이다. 감귤 전정에 나가면서 나쁜 가지만 자르지 말고, 각자의 마음속에 자라고 있는 구태라는 ‘도장지’도 함께 잘라내야 한다. 그렇더라도 제주감귤의 미래가 녹록지 않다. 현재로서는.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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