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불매운동의 전제
일본 불매운동의 전제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7.14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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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근 제주도 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

일본이라는 나라는 참 어렵다.

감정적인 대응은 쉬운데 현실 여건은 녹록하지 않다. 정치·경제 모든 면에서 식민지배 이후의 수탈 및 의존 구조가 계속되기 때문이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라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나? 유니클로나 무인양품, ABC마트에 가지 말까?

아사히나 삿포로 맥주도 멀리하고 지나는 일본 차를 보면 손가락질이라도 할까.

불매운동에 참여하면 일본의 수출규제가 원상회복될까. 일본 브랜드를 대신한 국내 업체는 반사이익을 얻으려나.

생각이 많다. 솔직히 앞장서서 일본 제품을 구매하지는 않겠지만 적극적으로 불매운동에 참여하기도 썩 내키지 않는다.

일제 강점기 이후 한국과 일본의 위상은 거의 변한 게 없다.

박정희가 한·일 국교 정상화의 대가로 자금을 받은 이후 식민지배의 청구권이 소멸됐다는 일본 주장을 한·일 양국은 그대로 유지해왔다.

대신 한국 정부는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정치적 용도로만 활용해 왔다.

그러나 정신대 문제처럼 민간 차원의 문제가 표면화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징용노동자에 대한 대법원 판결 역시 대일청구권이 소멸된 상태라는 일본의 주장을 뒤엎는 내용이다.

일본에게는 그동안 유지해온 틀의 파기인 셈이다.

표면적으로 일본의 수출규제가 참의원 선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지만 한국의 기를 꺾어 일본에 우호적인 정부를 세우려 한다는 분석 역시 설득력을 얻는다.

이는 전쟁을 할 수 있는 군대를 가질 수 있도록 헌법을 고치려는 일본 우익의 목표에 한국이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와도 부합된다.

일본의 개헌 및 극우화에 아무런 비판을 하지 못하는 한국 정부를 세우고자 하는 목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사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키는 한국 내에 있다고 봐야 한다.

한국 내 뿌리 깊은 정치와 경제의 일본 의존적 구조를 개편하려는 노력이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국내의 우익은 수출규제에 대해 일본 대신 현 정부 때리기에 매진 중이다.

우익과 보수라는 말에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민족주의와 애국주의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친일의 프레임이 보인다.

경제의 구조적 문제 역시 이번에 제대로 노출됐다. 삼성이나 하이닉스 같은 기업들은 이번 규제로 타격을 입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기업이라는 사실만으로 그 기업들의 어려움에 동조하거나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하는 게 맞는 일은 아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민연금공단에 6000억원의 손해를 끼치는 일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은 기업을 위해 불매운동을 하는 것이 맞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수직계열화돼있는 일본 의존적 산업구조의 불합리성을 개선하고자 하는 선언과 노력이 가시화돼야 한다.

정치적으로 일본에 동조하거나 경제적인 의존구조를 바꾸지 않고 현재 상황을 적절한 선에서 타협한다고 무엇이 달라질 수 있겠는가.

불매운동은 어쩔 수 없이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에 바탕을 둔다.

이 운동이 감정적 동조 이상이 되려면 국내 대기업이 조금은 민족주의적 국내 기업 육성 시스템을 가동하고자 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래야 최소한 일본 불매운동의 애국주의와 의미가 닿는 것이 아니던가.

·일 간 갈등이 어떤 결론이 날지 모른다. 다만 우리 사회가 경제 성장을 위해 안일하게 기댔던 일본 산업과의 수직계열화에서 벗어나 이를 독립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일본의 공격에 언제든 무방비 상태인 것은 변함이 없다.

그런 점에서 아베의 이번 조치는 참으로 바보스럽다. 새로이 변화를 선택하도록 계기를 마련해 주니 말이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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