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장 7월은
내 고장 7월은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7.09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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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문 전 서울신문 편집부국장·논설위원

한 해의 반이 지나고 나머지 반이 시작되는 7월이다. 황금돼지해다 뭐다 하면서 시작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반이 지나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다.
얼마 안 있어 곧 나이를 한 살 더 먹겠지. 아, 무정타 생각을 말자. 인간은 약간은 비겁하고 약간은 계산적이고 이기적이다. 지난 6개월이 만약 그러했다면 새로운 반은 좀 더 신선하고 좀더 진지해지면 어떨까 싶다.
장마가 시작되고 무더위가 찾아오는 7월이다. 7월은 휴가철이 시작되는 시절이다. 우리가 ‘내 고장 7월은’이라고 말 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이육사의 ‘청포도’이겠다. 이쯤되면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반가운 친구 만나 시원한 막걸리 한 잔 들이키며 추억을 떠올리다 시 한 수를 기억나는 데까지 읊어본다.
‘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여기까지는 대충 낭송한다. 잠시 후 한 잔 더 마시고 7월을 얘기하다가 마저 생각이 났는지 끝부분을 읊어댄다.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두렴’
우리가 잘 아는 시 ‘청포도’는 전체적으로 기다리는 사람의 경건한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고달프고 무망(無望)한 민족에게 정서적이면서도 막연한 기대와 희망을 갖게 했고 그렇게 해서 삭막한 갈등을 충족시키려 하고 있다. 일제에 의해 잃어버린 고향을 생각하며 다시 평화롭고 화해로운 인간적인 삶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이라는 소망과 의지를 ‘청포도’에 담고 있다. 시에 등장하는 ‘청포도’는 전설과 꿈이 충만되는 관념적인 과일로 나타나 있으며 풍성하고 평화로운 삶을 상징한다.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자 이육사에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이끌고 있다. 청포도가 익어가는 것은 자신이 바라는 평화로운 삶의 세계가 다가오는 그리움을 뜻한다.
시구 중에 ‘내가 바라는 손님’은 민족을 구원하고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초인적인 존재라고 해석할 수 있으며 ‘고달픈 몸’은 어두운 역사적 현실 속에서 이상을 실현하고자 겪는 괴로운 삶을 말한다.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은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정성이 담겨 있다.
이육사의 이름은 원래 이원록으로 1925년 독립운동단체 의열단에 가입, 그 해 일본을 갔다가 다시 의열단의 사명을 띠고 북경에 갔다. 1926년 일시 귀국했다가 북경으로 가 북경사관학교에 입학, 이듬해 가을에 귀국했으나 장진홍(張鎭弘)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좌, 3년형을 받고 투옥됐다. 이 때 그의 수인(囚人) 번호가 264번이어서 호를 육사(陸史)로 택했다고 전한다. 이육사는 1925~1943년 17차례나 투옥, 병을 앓아 1944년 옥사했다.
‘청포도’의 배경은 경북 영일만과 동해의 수평선이 보이는 야트막한 언덕으로 당시에는 일본인이 경영하는 대규모 포도밭과 동양 최대의 포도주 생산공장이 있었다.
이육사는 계속된 투옥으로 1937년 포항 송도와 경주 남산 심불암에서 요양을 한 적이 있다. 이 때 쓰여진 시가 ‘청포도’로 1938년 ‘문장’지에 발표됐다. 그의 시비는 1999년 겨울 영일만이 펼쳐보이는 포항시 호미곶 해맞이 공원에 세워졌다. 마치 영일만을 찾은 고달픈 손님들에게 청포도를 대접하는 듯 서 있다.
올해가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여서 그런지 7월이 되고 보니 문득 ‘내 고장 7월은’이 생각난다. 그러는 한편 내가 태어난 고장 제주의 7월은 무엇이고 어떤 것이 있을까 하는 질문도 해봤다. 텅 비어 있다. 남은 반을 어떻게 이어 나갈까. 이제 곧 휴가철이다. 올해의 휴가는 그 반을 생각하는 진지한 휴식이었으면 좋겠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그때에도/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았는가/내 목숨을 꾸며 쉬임없는 날이여’(이육사 ‘꽃’에서).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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