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심의 출근길
구도심의 출근길
  • 고현영 기자
  • 승인 2015.11.22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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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순. 제주문화예술재단 제주종합예술센터 TF팀장

9월부터 제주시 구도심으로 출근하고 있다. 행정구역상 이도1동에서 삼도2동으로 바뀐 것이지만, 그것만이 아님을 세 달 간 출근길에서 느끼고 있다. 출근길에서 제주시 구도심의 현재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 예전 그 곳에 켜켜히 쌓인 역사를 함께 읽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출근 코스는 대개 아라동 집에서 광양로터리를 지나 중앙로로 향한다. 남문로터리에서 삼도2동 구 제주대학교 병원으로 향하는데, 굽이진 골목길을 따라 삼도2동 사무실에 도착하면 15분 정도 걸린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비좁은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 사무실로 가는 길, 위태롭지만 그래도 남문로터리에서 남초등학교 앞 골목길을 고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 길에 쌓여 있는 기억들이 필자를 불러내기 때문이다. 남초등학교 일대는 어릴 적 놀이터였다. 학교 정문에 이르기 전 좁은 길이 나온다. 지금은 학교 앞 ‘떼기(달고나)’ 장수와 솜사탕 장수, 국화빵집도 사라졌다. 그 골목에 들어서면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간다.

예전 과수원이 있던 큰 양옥에는 찻길이 생겼다.  국화빵집을 지나 일방통행 도로를 타면 옛 도립병원(구 제주대학교 병원)이 보인다. 그곳이 도립병원 서쪽인데 이 길을 감싸고 도는 도로는 옛 제주성곽 자리다. 그 길에는 사람보다 자동차가 더 많이 다닌다. 옛 제주성터 대부분이 도로가 돼 버렸다. 도립병원 주변에 옹기종기 있었던 초가에는 주차장과 자동차공업사가 들어서 있다. 필자는 그 길을 타고 출근하는 것이다.

도립병원 뒤뜰의 소각장 터를 지나 오른쪽으로 돌면 이앗골이 나온다. 구 아카데미극장에서 퍼시픽 호텔로 뻗는 길이다. 이앗골은 도립병원 자리가 조선시대에 제주목 이아(貳衙) 터였던 데서 연유한다. 이앗골 중간에서 방향을 틀어 삼도2동 주민센터로 가면 필자가 일하는 사무실이 나온다. 이앗골에서 관덕정에 이르는 길은 병목골이다. 병목골로 가는 길에는 향사당이 있다. 향사당은 지금으로 보면 제주목(濟州牧)의 행정을 협의하던 자치기구이다.

이아 터는 일제강점기 자혜의원으로 바뀌었다. 일제 식민 당국이 제주 행정의 중심인 제주읍성터를 허물면서 이아도 사라졌다. 그 뒤 자혜의원은 도립병원, 제주의료원을 거쳐 제주대학교 병원이 되었다. 이곳은 제주 행정의 심장부이자 의료의 산실이었다. 제주4․3사건의 발화점이 된 관덕정에서 일어난 3․1 발포사건으로 다친 사상자들이 치료를 받던 4․3유적지이기도 하다.
이런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장소가 제주대학교 병원이 제주시 아라동으로 이전하면서 오랫동안 휴면 상태로 있었다. 병원이 떠남으로써 거리도 한산해졌다. 출근길에 보이는 사람이라곤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그 쓸쓸한 거리 풍경을 보면서 가는 사무실, 그렇다고 출근길이 결코 외로운 것은 아니다. 옛 제주성 한가운데의 이아 터를 보면서 아련히 피었던 동백꽃을 본다. 이아 터에 핀 동백을 보려 육지에서 부임한 목사는 꽃 나들이를 했다. 지금 그곳에는 동백이 지고 없다. 자취도 없다. 제주목 이아의 아름다운 이름인 찰미헌(察眉軒)이 떠오른다. 찰미헌은 백성의 눈썹을 살펴서 선정을 편다는 의미다. 제주목사에 이어 제주 행정의 2인자인 제주판관의 공직자로서 태도가 읽힌다.

이 같은 이야기가 있는 길이 필자의 출근길이다. 바람이 있다면 이 구도심에서 사람을 더 만났으면 좋겠다. 행사용으로 거리에 나부끼는 만국기 대신 사람들이 출렁거렸으면 좋겠다. 몇 년 전부터 삼도2동에 예술인들이 터를 잡고 있다. 예술인들이 더 안정된 환경에서 그들의 꿈을 펼치고 이곳에 굳건히 자리잡았으면…. 제주시 구도심을 걸으면서 그곳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꺼내 공유하기를 희망한다. 만국기만 펄럭이면 뭣하나. 사람들을 구도심 거리에서 만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고현영 기자  hy0622@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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