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일본군 위안소에 10여명 여성 있었다"
"제주 일본군 위안소에 10여명 여성 있었다"
  • 정용기 기자
  • 승인 2019.07.08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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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대 평화연구소 성산리사무소서 기자회견
성산 주민 오시종 "성산리에 2곳 위안소 운영"
현재 위안소 추정 건물터 흔적 사라진 상태
연구소 "증언 시작으로 추가 연구 필요하다"
8일 제주대학교 평화연구소가 논문을 통해 발표한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의 일본군 위안소 추정 장소
8일 제주대학교 평화연구소가 논문을 통해 발표한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의 일본군 위안소 추정 장소

“요카렌(일본 해군)들이 쉬는 날이면 위안소에 줄을 서 있었어요. 2곳의 위안소가 있었는데 각 5∼7명의 여성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8일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의 일본군 위안소 추정 건물터. 이 곳은 제주대학교 평화연구소가 최근 논문(태평양 전쟁 말기 요카렌의 제주도 주둔과 위안소)을 통해 발표한 제주지역 첫 일본군 위안소 건물이 있었던 곳이다.

현재는 녹색의 일자형태 지붕을 가진 일반 가정집 건물이 들어섰다. 일본군 위안소가 있었던 곳임을 짐작케하는 작은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인근의 또다른 위안소 추정 건물 역시 사라지고 공터로 남아 있었다.

해방 직전인 1945년 4월부터 성산리 2곳에서 일본군 위안소가 운영됐었다는 게 제주대 평화연구소 측의 설명이다.

연구소는 이날 위안소 운영을 목격했던 성산읍 주민 오시종 할아버지(90)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8일 성산읍사무소에서 일본군 위안소로 추정되는 현장을 목격한 오시종 할아버지가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8일 성산읍사무소에서 일본군 위안소로 추정되는 현장을 목격한 오시종 할아버지가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오시종 할아버지는 “민가를 개조한 위안소는 내가 살던 집에서 30m도 되지 않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일본 해군들이 쉬는 날이면 줄서서 위안소 들어가려고 기다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위안소를 드나들던 여성 중에 제주 사람은 없었다. 위안소 주변으로 일본군이 보초를 서 지키기도 했다”며 “그러다가 1970년대 제주에서 우연히 위안소에 있던 여성을 만날 수 있었는데, 많은 얘기를 나누진 못했다”고 말을 아꼈다.

현재까지 성산리 2곳에 일본군 위안소가 설치·운영됐음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오 할아버지의 증언과 당시 정황이 대부분이다.

위안소가 강제징발된 여성들로 운영된 것인지 여성들을 고용해 유곽(성매매 업소) 개념으로 운영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추가 조사가 필요한 실정이다.

이번 논문 연구를 주도한 조성윤 제주대 평화연구소장은 “2010년부터 연구를 하면서 만난 성산 주민 6명 중 위안소의 상황을 목격하고 그곳의 여성을 직접 만난 것은 오 할아버지가 유일하지만 그의 증언은 수차례의 인터뷰와 현지 조사, 일본 측 자료를 교차 분석한 결과 믿을 만하다”고 말했다.

조 소장은 “다만 부족함을 메울 더 많은 증언과 관련 연구가 필요하다”며 “이번 발표가 제주는 물론 국내 위안소 연구를 촉진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정용기 기자  brave@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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