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의 의미
6·25의 의미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9.06.23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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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장미의 계절이라 하던가.

재작년 화단에 꺾꽂이로 심어놓은 장미가 크게 자라 꽃을 활짝 피워냈다.

선홍빛 붉은 핏빛 꽃잎. 민족상잔의 비극적인 6·25전쟁을 상기시킨다.

제주시 신산공원에도 붉은 장미가 만개하고 올해도 6·25전쟁 호국영웅 4인 및 참전영령 합동 추모식이 열렸다.

예년과 달라진 점은 참석 기관장이 상당히 안 보이는 것과 추모객이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매해 보이던 해병 3·4기 참전 용사들도 많지 않았다.

그래선가. 김태석 제주도의회 의장의 추도사도 맥 빠졌다.

6·25 참전 기념탑 뒤에는 2000여 명의 제주지역 전사자 이름이 가나다순으로 새겨져 있다. 필자와 같은 성씨 전사자도 수십명이다. 누가 가져다 놓았을까. 하얀 백합 몇송이가 비에 젖어 있다.

 

내일은 6·25 전쟁 69주기다. 17~18세 어린 제주 학도병들이 피 흘렸던 전쟁. ‘김정은 만세를 대놓고 외치는 오늘의 시점에서 이 전쟁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일까.

남북을 막론하고 엄청난 희생이 바쳐진 전쟁이었는데도 그 것은 다만 부끄러운 민족상잔이었을 뿐이며 분단 고착화의 계기가 됐을 뿐이었는가. 공원에 높이 선 6·25 참전 기념탑은 이 전쟁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북한 김정은은 지난주 방북한 중국의 시진핑과 함께 조중(朝中) 우의탑을 참배하고 6·25는 남한이 북한을 침략한 전쟁이라는 북침론을 다시 폈다.

이렇게 70년이 다 된 지금까지 남과 북은 남침이냐 북침이냐를 놓고 다투고 있다. 하지만 공개된 모든 자료를 볼 때 북한의 남침설이 정설이다.

 

이제 남침이냐 북침이냐가 무슨 의미 있으랴. 적개심만 높이고 남북 대결의 역사 의식을 키우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관점을 조금 달리해보면 6·25는 남북을 막론하고 통일을 목적으로 한 전쟁이라 볼 수 있다.

북한의 김일성은 통일을 국가 목표로 삼았고 남한의 이승만 대통령의 최대 정책 목표도 북진 통일이었다.

통일 목적이 아니었다면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이 일어났다 해도 그 침략군을 38선 북쪽으로 격퇴하면 됐지 압록강 두만강까지 진격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또 북한 주장대로 우리가 북으로 침략했다고 해도 북이 우리 국군을 38선 이남으로 물리치면 됐지 낙동강까지 쳐내려 올 이유는 없는 것이다.

실제로 6·25 전쟁 때 처음에는 북쪽에서 통일할 뻔했고 다음에는 남쪽에서 통일할 뻔했다. 북쪽에서 통일하지 못 한 것은 미군 중심의 유엔군이 참전했기 때문이었고 남쪽에서 통일하지 못 한 것은 중공군 참전 때문이었다.

 

6·25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말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다. 한반도가 대륙 세력권으로 들어가는 경우 해양 쪽 일본, 미국이 불안해지고 해양 세력권에 들어가는 경우 대륙 쪽 중국, 러시아가 불안해진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 초 중국, 러시아와 미국, 영국의 지원을 받는 일본이 한반도에서 충돌한 청일, 러일 전쟁 이후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은 6·25를 거치고 한반도에 대치해 있다.

그리고 한반도의 주인인 우리는 대륙과 해양 세력 모두에 무시당하고 있다.

단순히 우리가 영토가 작아서 생긴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6·25에 피 흘리고도 우리의 존재감이 없어져 버린 탓이다. 남의 손에만 기대는 나라를 존중해 줄 국제 사회는 없다. 6·25가 오늘에 주는 교훈이다. 주변 강대국에 흔들리지 않는 줏대가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럴 때 이 전쟁에 나가서 아직도 제주에 돌아오지 못한 1300여 미귀환 전사자를 비롯한 2000여 제주지역 호국영령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될 것이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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