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뉴브강의 할머니와 손녀’
‘다뉴브강의 할머니와 손녀’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6.16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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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성이 어린아이를 한 쪽 팔에 꼭 끌어안고 있었다.”

다뉴브강 유람선 실종자 수색팀이 60대 할머니와 여섯살 손녀를 침몰한 배에서 찾아내고 전한 말이다.

손녀를 맡아 키우다가 여행을 함께 갔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 마지막 순간에 사람들은 눈물을 쏟았다.

손주를 키우는 조부모 육아(일명 황혼 육아)가 많아서일까. 지난주 화두는 다뉴브강의 할머니와 손녀였다.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나도 그랬을 거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우리나라의 맞벌이 가정 510만 가구의 절반 정도가 조부모가 육아를 맡고 있다고 한다. 맞벌이 부부 중 자녀를 키우는데 할머니,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50%, 워킹맘이 아닌 경우이지만 조부모가 함께 육아를 하고 있는 경우도 10% 정도로 나타났다.

이제 조부모 육아는 우리 사회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현실이다.

 

가끔 바둑을 같이 두는 친구가 첫 손자를 보더니 언제나 싱글벙글이었다.

첫 돌이 된 손자가 방긋방긋 웃으며 걷기 시작했다고 자랑을 한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주며 손자 자랑이 끝이 없다. 아들을 닮았으면 머리가 좋아 공부도 잘할 거라느니, 자기를 닮아 인물도 훤하다느니, 순둥이라 잠도 잘 자고 투정도 안 부린다는 등등.

그 때마다 싫은 내색도 못 하고 속으로만 이 친구 약간 미치지 않았나생각했다. 하염없이 손자 자랑을 들어주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그러다가 나도 손자를 보게 됐다. 손자가 이렇게 예쁜 줄 예전에 몰랐다. 손자가 없는 사람은 모르리라. 겪어보기 전에는 이해가 안 된다.

 

자식의 자식 농사까지 맡는 것은 분명 문제다. 하지만 맞벌이 부부가 늘고 아이를 키우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우리 사회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게 현실이라면 조부모 육아의 긍정적인 효과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격대교육이라는 말을 최근에야 알았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와 손녀를 맡아서 교육한다는 말이다.

조부모가 대를 건너 교육을 맡게 되면 오랜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경험이 많지 않은 부모보다는 아이의 성과에 조급해하지 않고 더 너그럽게 기다려주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대 연구팀이 조부모와 손자·손녀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결과 조부모와 자주 접촉할수록 아이의 학교 성적과 성인이 된 후의 성취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느끼는 만족도도 상당하다. 연세대 아동가족학과의 연구 결과 손자·손녀를 돌본 경험이 있는 할머니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삶의 만족도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손자·손녀 양육은 힘든 부담이다.

그러나 육체적 고단함에 반해 손자·손녀와의 긴밀한 유대감을 형성함으로 얻어지는 정서적 안정과 행복감은 바꿀 수 없는 보상이 되기도 한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스스로 건강 관리에 힘을 쓰는 계기가 되고 손자·손녀와의 교감이 정신적으로 도움이 돼 오히려 건강에 좋은 영향을 준다는 보고도 있다.

실제로 손자를 키우고 장성한 손자들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는 노인들이 건강하다. 그 때문에 건강하다면 조부모 육아를 힘들고 어려운 부담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좀 더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다.

문제는 이 시대 할아버지 세대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직장에 파묻혀 사랑하는 아이들과 말할 시간도 놀 여유도 없었던 불행한 세대로 육아가 서툴기 짝이 없다.

다뉴브강의 할머니와 손녀를 보며 나도 그랬을 거라는 할머니와 육아를 모르는 할아버지를 위한 프로그램 마련 등 사회적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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