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와 처녀 뱃사공
김구와 처녀 뱃사공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5.29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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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 전 서울신문 편집부국장·논설위원

실화는 언제나 감동을 더해준다. 영화든 소설이든. 무대를 중국으로 옮겨본다. ‘선월’(船月)이라는 소설이 있다. ‘배와 달이라는 뜻이다. 중국의 여류작가 샤녠성(하련생)이 썼다. 김구가 중국에서 만난 처녀 뱃사공과의 러브 스토리를 다룬 내용이다.

 

저녁 무렵이 되자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운하 위에는 풍랑이 일기 시작했다. 아이빠오(주애보)가 노를 잡은 그녀의 방수포를 친 작은 배는 풍랑 속에서 흔들거렸다.

갈 수 있겠소?”

김구가 선실의 바람을 막는 천막 휘장을 들치고는 나와서 물었다.

괜찮아요. 삼탑만(三塔灣) 강변이 넓어서 바람도 세지요. 좀 더 저어 들어가면 풍랑은 그리 없어요.”

아이빠오는 노를 잡은 손에 힘을 주고는 김구에게 휘장을 내리고 선실로 들어가서 앉아 있으라고 재촉했다.

김구의 머뭇거리는 눈에는 어쩔 수 없다는 심정과 불안함이 가득 배어 있었다. 한 가닥 뜨거운 감동이 아이빠오의 마음 속 저 바닥에서 끓어올랐다.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것이다. 작가는 인생은 배와 같아 인연에 따라 달을 얻고라고 서문에 언급하면서 혁명가와 처녀 뱃사공의 사랑과 회한을 담담하게 그렸다고 말한다.

달이 강물에 비치면 처녀 뱃사공은 나룻배에 달을 싣고 강을 건넜다. 아이빠오는 김구를 기다리며 반달 같은 모양의 신발을 만들기도 했다.

샤녠성은 독립운동가 선월외에도 김구의 일대기를 그린 호랑이 걸음으로 떠난 망명중국에서의 김구’, 그리고 윤봉길 의사의 일대기 천국으로 돌아가다를 써서 중국 문단에서 한류삼부곡’(韓流三部曲)의 작가로 불린다.

샤녠성의 큰 형부는 임시정부 시절 백범 김구의 경호원으로 활동했다. 그래서 1987년 한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을 받았다. 샤녠성은 이 큰 형부로부터 맺어진 김구와의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김구의 아들 김신이 중국 가흥을 방문했을 때 여러 차례 동행하며 안내를 했다. 김구의 가흥 피난을 도와준 추푸청은 일찍이 일본 유학 당시에 광복회와 중국동맹회 진보적인 지식인이자 교육자이며 항일운동사를 빛낸 인물이다. 이래저래 김구와 인연이 되는 사람들이다.

여기에서 잠시 생각해보면 실존 인물인 아이빠오는 한국독립운동사의 어느 책이나 공식 문건에도 언급되지 않는다. 임시정부 주석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5년 동안 함께 지냈음에도 말이다. 다만 백범일지에 잠깐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5년이나 가깝게 나를 광동인으로만 알고 섬겨왔고 나와는 부부 비슷한 관계도 부지 중에 생겨서 실로 내게 대한 공로가 적지 아니한데 다시 만날 기약이 있을 줄 알고 노자 이외에 돈이라도 넉넉하게 못 준 것이 참으로 유감 천만이다.’

아이빠오는 20살을 갓 넘긴 나이였고 김구는 57살이었다. 장년의 쫓기는 혁명가와 이방의 여자 뱃사공의 유사 부부 생활은 예상보다 길게 지속됐다.

그들은 사통팔달의 호수와 운하를 5년 동안이나 쏘다녀야 했다. 아이빠오는 5년 동안 임시정부를 움직였던 여성인 셈이었다. 다른 이가 보기에는 젊은 아내는 노를 젓고 능력 있어 보이는 장년의 남편은 수려한 산하의 풍경에 무심히 취해 있는 장면이랄 수도 있었다.

김구는 광복이 되면서 한국으로 왔고 1949626일 경교장에서 안두희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올해 6월이 사망 70년이다.

선월의 마지막 부분이다.

 

아이빠오는 김구와 헤어진 후 재회를 간절히 기다렸다. 그러던 중 김구가 피살됐다는 소식을 듣고 아니야 믿을 수 없어라고 외치고는 김구와 선상 생활을 했던 바로 그 강물에 배를 띄웠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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