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용할 양식
일용할 양식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5.28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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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용 수필가

요즘, 화자(話者)의 어머니를 보면서 새삼 양식의 존엄(尊嚴)에 감사함을 느낄 때가 많다. 어머니의 일용한 양식은 영양 캔이다. 중병 때문에 입으로는 음식을 잡숫지 못하다보니 코로 줄을 끼워 하루 세끼를 영양 캔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이 양식이 없었다면 4년 전 벌써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한 끼의 밥심으로 삶의 존재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존엄하고 위대한 것이라는 걸 느끼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먹기 위해 산다는 말이 있다. 동물들이든 식물이든 모든 생명체들은 저마다의 양식이 있기에 생명을 유지한다. 사람들에겐 눈물 젖은 빵도 양식이고 밥과 국도 일용한 양식이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 짐승들이 그렇듯 양식 때문에 죽이고 먹히는 것, 사람 또한 어떠한가.

우리에게도 하루 한 끼만 배불리 먹어봤으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던 시절이 있었다. 꽁보리밥과 배추를 넣고 끓인 된장국이면 최고의 밥상이던 시절. 식구들이 둘러앉아 큰 양푼이 그릇 하나에 수북하게 밥을 넣고 함께 먹었다. 하지만 배를 채울 수가 없었다.

추운 겨울이 되면 어머니는 밥이 식을까봐, 항상 아랫목 이불 밑에 묻어두었다가 밥상을 차리곤 했다. 지금은 풍부해서 남아돌아가는 흰쌀밥이지만 그때는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제삿집 아이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을 정도였다.

매일같이 꽁보리밥에 된장국만 주시던 어머니가, 하루는 양푼이 그릇에 쌀과 보리를 섞인 밥이 밥상에 차려졌다. 식구들이 눈이 둥그레지더니 누가먼저랄 것도 없이 수저도 아닌 손으로 먼저 먹는다고 난리를 피웠던 일이 생각난다.

옆집에서 제사가 끝난 뒤 갖고 온 쌀밥을, 어머니는 보리밥을 섞어서 밥상을 차린 것이다. 자식들의 그 모습을 바라보시며 어머니는 얼마나 가슴이 아파했을까. 눈가에 눈시울을 적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머니는 항상 굶으셨다. 당신도 먹고 싶지만 넉넉하지 않은 살림 때문에 아이들을 위해 배고픔도 마다 않고 밝은 얼굴로 참으셨다.

그뿐이겠는가. 당신은 언제나 춥고 젖은 자리에 누우시면서, 자식들은 따뜻하고 마른자리에 눕히셨다. 자식들이 사고를 치고 어려움에 쳐있을 때마다, 이곳저곳 다니시며 돈을 빌려 해결하시고도 쓴 소리 한 번 아니 하셨다.

자기 몸의 살을 도려내는 일이 있을지라도 자식을 위한 마음은 한시도 잊지 않으신 것이다. 이처럼 자식에 대한 어머님의 사랑은 너무도 컸지 싶다.

배고픈 자의 심정은 배고파본 사람만이 안다. 지금은 달라도 너무 달라졌다. 너무 잘 먹어서 살을 빼기위해서 난리고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는 광고가 미디어를 장식할 정도다. 그러면서 못 살겠다고 난리다. 일용한 양식의 존엄을 생각해 볼 일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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