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주말 노형동에 있는 창고에서 자료를 찾아 멀리서 오시는 손님에게 보여드릴 책들을 선별했다. 그러다가 한 쪽 구석에 있는 책꽂이 제일 윗단에 꽂혀있는 책 한 권에 눈길이 갔다. 30여 년 전 고등학생 시절에 한 번 읽었던 책이었다.
읽다보면 낯이 근질근질 해지는 내용이 많았던 책이었기에 그 후로 다시 읽은 기억은 없지만 그 책의 주인공은 지금도 여전히 뉴스메이커다.
우리나라 제11·12대 대통령을 지낸 그 분과 개인적인 인연이 있을 수는 없었지만 몇 가지 간접적인 추억(?)이 있다.
필자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81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제62회 전국체전에 우리 학교가 합창과 카드섹션을 담당했다. 몇 주간 계속된 연습 기간 동안 따가운 가을 햇살에 얼굴은 새카맣게 타고 카드섹션 대열을 맞추느라 화장실도 못 가면서 고생했던 적이 있었다. ‘체육관 대통령’으로 유명했던 그 분이 선거인단에 의한 대통령 간선제와 7년 단임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을 거쳐 제12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해였다. 비록 넓은 운동장을 사이에 두기는 했지만 우리는 마주 본 사이다.
두 번째는 군 입대 중이던 1987년에 있었다. 6월 민주 항쟁의 결과로 대통령 직선제 선거가 실시되었을 때였다. 필자가 ‘위험인물’이라고 장난스럽게 얘기하면서도 기표소 안으로 중대장의 손가락이 들어와 기호 1번만 보이도록 투표용지를 누르고 있던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다. 내 인생의 첫 번째 선거를 그 분이 망쳤다. 기호 1번으로 출마한 그 친한 친구를 위해…? 아니 퇴임 후 자신의 안전을 위한 일이었을 것이다.
당시 다른 후보를 찍은 사병이 몇 명 나온 예하부대장이 육사 선배인 사단장에게 ‘쪼인트를 까였고’, 당선 축하연에서 ‘우린 육사에서 그렇게 안 배웠다’고 대들고 나서 옷 벗고 예편했다고 들었다. 그 분의 친구가 당선된 후 다음 해에 치러진 제13대 총선에는 어떤 자신감에선지 대선 때와 같은 만행(?)은 없었기에 그 결과가 ‘여소야대’가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는 천문학적인 추징금을 환수하기 위해 2014년 2월에 한 옥션회사에서 주관한 그 분이 소장했던 미술품 경매에 참여했다. 그 분의 거실 등에 걸렸다는 유명 작가들의 작품은 언감생심이었고 우리 같은 소시민들이 꿈꿀 수 있는 소소한 미술품 3점을 낙찰 받는 데 만족해야 했다. ‘통장에 29만원 밖에 없다’고 오리발을 내미는 그 분을 위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싶은 마음뿐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없는 돈에 여전히 골프나 치러 다니는 그 분의 행태에 속이 쓰리기도 하다.
각설하고…그 책은 ‘황강(黃江)에서 북악(北岳)까지’(동서문화사, 1981)이다. 현대판 용비어천가인 이 책을 집필한 우리나라 해양문학의 개척자인 작가 천금성(千金成)에게는 필생의 오점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책이 출판된 그 해 1월 23일은 대법원에서 내란음모와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김대중 사형판결 확정을 선고한 날이다.
육군사관학교 사관생도 신조 가운데 하나는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고 들었다. 그 분이 보이는 작금의 행태를 보면 사관생도의 신조를 지킨 이는 이제는 소시민이 되어 살아가고 있을 그 예하부대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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