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잔소리
어머니의 잔소리
  • 한국현 기자
  • 승인 2019.05.01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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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잔소리다. 듣기 좋은 어머니의 잔소리다. 오늘도 85세의 어머니는 쉰여덟 아들에게 잔소리를 한다. 담배는 끊어라. 술은 적당히 먹어라. 행동 조심해라. 절대 술 먹고 운전하지 말라…. 아들은 토를 달지 않고 무조건 ‘예’하고 대답한다.
전에는 안 그랬다. 어머니가 잔소리를 하면 아들은 역정을 냈다. 심지어는 신경질적인 반응까지 보였다. “한 두살 먹은 어린 애냐”라며 버럭했다. 그리고 되돌아선 금방 후회를 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 이다. 다음에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그런데 또 그랬다.
이제는 안 그런다. 철이 들었나 보다. 어머니와 떨어져 사는 아들. 떨어져 봐야 자동차로 20분 거리다. 예전에는 어머니 집에 자주 가지 못했다. 가끔 갔는데, 그것도 아주 가끔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바쁘면 얼마나 바쁘다고.

아들은 어머니의 잔소리가 듣고 싶으면 금방 달려간다. 어머니가 부르기도 한다. 우편물이 왔다며 와서 가져가라고 한다. 보고 싶다는 얘기다. 가면 어머니의 잔소리는 이어진다. 물론 듣기 좋은, 듣고 싶은 정겨운 잔소리다. 어머니의 잔소리는 아직도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있다는 메시지다.
어머니의 잔소리는 진화한다.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르다. 세금이 잘못 부과된 것 같다며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따지기도 한다. 총기(聰氣)로 똘똘 뭉쳐있다. 그런 어머니를 아들은 흐뭇하게 바라본다. 앞으로 쏟아 낼 잔소리가 기대된다.

내일 모레 환갑을 바라보는 아들이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여전히 빈틈을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는 가끔 아들에게 말을 한다. 내가 치매에 걸리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라고. 부모가 치매를 앓았을 때 자식들이 감당해야 할 수고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서다. 몇몇 친구들의 사정이 그런가 보다.
참, 어머니라는 존재는…. 당신의 고통으로 낳은 자식들이 어른이 되면 ‘수고비’라도 달라며 시위를 할만도 한데 나이가 들어갈 수록 가진 것 모두를 ‘아직도 어린 애’에게 덤으로 준다.
바쁜 자식들이 당신 때문에 수고할까봐 아파도 내색을 하지 않는다. 아픔은 혼자 속으로 삭인다. 그것도 모자라 자식들의 아픔까지 온몸으로 껴안는다. 마치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운명처럼.
부모는 자식들에게 효도를 강요하지 않는다. 당신의 몸속에 있다 발버둥치며 세상 밖으로 나온 새끼들을 눈물로 감싼 어머니는 더욱 그렇다. 효도, 별거 아니다. 아주 쉽다. 건강한 모습으로 자주 찾아 뵈면 된다. 때론 손자들 재롱도 보여주고. 멀리 떨어져 있으면 안부 전화도 드리고 말이다. 그것도 못하는 자식들이 있다. 불효(不孝)다.

어머니는 항상 아들을 보고 싶어 한다. 아들은 그걸 알면서도 자주 발걸음을 옮기지 못한다. 어머니는 바쁘면 안 와도 된다고 한다. 그러는 게 어머니다.
어버이 날이 있는 달이어서 그런가? 어머니를 생각하면 코끝이 찡해지는 5월이다. 굳이 5월이 아니더라도 어머니는 코끝이 찡하게 다가온다. 어머니라는 말만 나오면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먹고 사느라 바쁘겠지만 어머니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5월 이었으면 한다.
예전에 썼던 글은 꺼낸다. 어머니! 5월 가정의 달에 당신을 생각하면서 어느 시인의 시를 빌려 아들의 마음을 전합니다.

‘한 몸 이었다 / 서로 갈려 / 다른 몸 되었는데 // 주고 아프게 / 받고 모자라게 / 나뉘일 줄 / 어이 알았으리 // 쓴 것만 알아 / 쓴 줄 모르는 어머니 / 단 것만 익혀 / 단 줄 모르는 자식 // 처음대로 / 한 몸으로 돌아가 / 서로 바꾸어 / 태어나면 어떠하리.’ (김초혜의 ‘어머니 1’ 전문)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한국현 기자  bomok@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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