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 제347호 제주의 제주마
천연기념물 제347호 제주의 제주마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4.25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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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철.제주특별자치도 축산진흥원

제주마는 흔히 제주도 조랑말이라고 하며, 키가 작아서 과실나무 밑을 지날 수 있는 말이라는 뜻의 과하마(果下馬) 또는 토마(土馬)라고도 한다. 제주마의 특징은 체질이 건강하여 병에 대한 저항력과 생존력이 강하고, 털색이 다양하다. 제주에서 말 사육 시기는 석기시대 말기에서 청동기시대 이전으로 추정된다. 문헌상으로는 고려 문종 27(1073)에 제주의 명마를 진상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마필 관리는 고려 원종 14(1274) 군마 생산·공급 계획에 의해 고려 충렬왕 2(1276)에 탑자적(塔刺赤)을 다루가치로 임명하여 몽골마 160마리가 제주 동쪽에 수산평(水山坪, 지금의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 일대)에 입식 되었다. 이때부터 제주에서 본격적인 말 사육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듬해(1277)에 제주의 목마장을 관리하기 위해 수산평과 한경면 고산리에 각각 동·서 아막(阿幕)이 설치되고, 말과 함께 말을 기르는 전문가들이 제주에 들어왔으며 이들은 훗날 목호(牧胡)라 불리게 되었다. 공민왕 23(1374)까지 약 100년에 거쳐 몽골말이 육성되어 공출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시대 이전에도 제주도에 재래마가 있었을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고유한 재래마가 아직까지 보존되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원의 목장 설립 시 들어온 몽고마와 품종개량을 위해 도입된 북방계 말에 의해 잡종화되어 우리 기후에 오랫동안 적응된 말을 제주의 제주마라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조선 왕조의 개창자 이성계는 팔준마라 불리는 여덟 마리의 명마가 있었는데, 이 중 위화도 회군 당시 타고 있었던 응상백(凝霜白)이 제주마였다고 한다. 숙종 28(1702) 제주 목사 이형상에 의해 제작된 탐라순력도에는 관 소유의 말이 9372, 703필에 제주의 인구수가 43515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기록된 수치는 관 소유만을 기록한 것으로 민간 소유의 말을 포함할 경우 제주마의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마는 농경문화에 크게 기여해서 한때는 2만여 마리에 달했으나 1960년대 이후 수송수단의 발달로 이용도와 경제적 가치가 떨어져 1986년에는 제주마가 1347마리로 급격히 감소하게 되었다. 매년 감소추세에 있는 제주마의 멸종방지를 위해 198628일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제347호로 지정하여 제주특별자치도 축산진흥원에서 보존 관리되고 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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