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을 사서 한다고요?
고생을 사서 한다고요?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9.04.21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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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를 기리는 묘제에 갔다가 여러 어르신과 만났다. 여기저기서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꽃이 피어난다. 오랜 만에 문중의 노소(老少)가 한 자리에 모여 인사를 나누고 건강과 성공을 빌어주는 혈연(血緣)의 아름다운 자리다.

하지만 인사는 잠깐. 피를 나눈 한 집안사람들도 왜 이렇게 다른가. 삶과 사회 이슈에 대해 세대 간 견해 차가 너무나 뚜렷하다. 우선 어르신들은 젊은이들에 대해 불만이다.

요새 젊은이들은 전혀 고생을 안 하려고 해.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는 건데그저 맨날 놀 생각만.”

이런 어르신들의 말을 듣던 40대 이하 젊은이들은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다른 곳으로 뜬다. 그리고 입을 삐죽이며 하는 말.

고생을 사서 한다고요? 난 안 샀는데도 고생합니다.” “젊어서 고생한 사람 늙어서도 고생합디다.”

산업 개발 이전과 이후 세대의 사고방식이 이렇게 확연히 다르다.

 

우리나라는 이제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14%를 넘어선 고령사회다. 그리고 세대 간 갈등의 벽이 두꺼워지고 있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4·36·25전쟁 등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아온 어르신들로서는 요즈음 젊은이들의 인생관이나 생활관을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YOLO(You Only Live Once·인생은 한 번뿐이다)’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은 단어 자체가 생소하고 이해하기조차 어렵다.

지난주에 중국을 대표하는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그룹의 마윈 회장이 젊어서 고생을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느냐며 젊어서 고생커다란 복이라고 했다가 중국의 젊은이들에게 호된 비판을 받았다. 결국 마 회장은 자신의 웨이보 계정을 통해 일에 관한 열정을 강조하기 위한 취지였다면서 입장을 바꿔 구구절절이 해명했다. 국경을 초월해 젊은이들은 과거 세대와 다른 가치관, 다른 삶을 추구하고 있다.

 

개발 이전 세대는 먹고살아야 하는 생존의 문제가 우선이었다. 빈곤 탈출이 최우선이었기에 매사에 효용과 효능을 중요시했다. 반면 개발 이후 세대는 부모 세대가 이룬 풍요를 바탕으로 한 발 더 나아가 사물이나 사건에 담긴 의미에 집중한다.

철학 개념을 빌려 생각해보면 개발 이전 세대는 존재론적 사고를 하고 이후 세대는 인식론에 가깝게 사고한다고 할까. 존재론은 사물과 사건의 실존 여부와 쓸모에 집중하고 인식론은 사건의 의미와 해석에 초점을 맞춘다. 한 마디로 부모 세대는 효용을 찾았고, 자식 세대는 의미를 찾고 있는 셈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김춘수의 시 의 한 대목이다. 존재론적 개념으로 보면 꽃은 그냥 꽃일 뿐이다. 하지만 인식론적 관점에서는 이름을 불러주자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대상이 다가와 꽃으로 재해석된다. 이제 우리 사회는 산업 발전을 통해 존재론을 지나 인식론의 세계에 접어든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사고방식과 가치의 지향점이 다른 세대 간 의견 대립은 지속될 것이다. 사회적 소통을 위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개발 이전 세대가 존재론적 과거에만 매몰돼 있는 건 아니다. 시대 변화를 인식하고 이에 발맞추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인문학 강좌가 열풍이다. 존재에서 인식으로 바뀐 시대상을 이해하려는 개발 이전 세대의 노력이 반영된 결과다. 이후 세대도 이런 이전 세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부모 세대의 시대적 당면 과제와 덕목에 대한 존중이 따라야 한다.

사고방식은 단순히 연령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기질적으로 존재 관점으로 사고하는 사람도 있고, 사건의 인식을 중시하는 사람도 있다.

소통에 필요한 것은 나이나 기질을 떠나 서로 다른 관점을 이해하려는 자세다.

김춘수의 시 마지막 대목처럼 세대 간에 불통이 아니라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kangm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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