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탈출기
꼰대 탈출기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4.16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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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전력거래소 제주본부장

며칠 전 여직원들과 점심을 먹고 나서 입가심으로 어떤 매장의 커피가 제일 맛있는지를 얘기하게 됐다.

예전에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면 된장녀가 되니 잔치 커피를 마시라고 했던 사람이 이젠 프렌차이즈 커피를 가려먹을 정도로 변했다며 웃는다.

겉으론 같이 웃었지만, 마음 속으론 충격을 받았다. 내가 바로 꼰대였다니.

언젠가 에너지 관련 회의에서 만났던 선배로부터 너는 가르치려 들지만 않으면 참 좋은데라는 말을 들었다.

아내에게 나의 꼰대 성향을 물었더니 작심한 듯 쏟아낸다.

자기 확신이 경이로울 정도로 강하고 나와 대화하다 보면 벽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아내는 평소에도 내가 말하는 것을 독차지한다고 했었다. “모든 사람이 당신처럼 생각해야 한다고 여기지 말고, 자신이 똑똑하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말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본사에서 근무하다가 승진하면서 제주에 내려오니, 실무를 총괄하던 부장 시절과는 달리 골방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직원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해 놓고는 결과를 기다리지 못하고 일의 경과를 수시로 챙기면서 잔소리를 하게 된다.

이제서야 문득, 내가 꼰대짓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는 꼼꼼히 챙긴다고 여겼지만, 직원들의 입장에선 귀찮았을 테고 자기 생각을 펼칠 시간도 없이 수시로 강요당하는 꼴이 아닌가?

돌이켜보면 나는 목소리가 크고 자기 주장이 강했다. 의견이 다른 후배직원에겐 윽박지르기조차 한다.

15년 이상 쌓인 경험으로 모든 것을 주도하는 기분이 들어서 혼자 잘난 줄 알았다.

노벨상 수상자이자 행동경제학자인 대니얼 카너먼에 의하면 인간이 자신의 무지를 외면하는 능력은 거의 무한하다고 한다.

우리는 객관적인 평가에 비해 자신을 더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 여긴다. 모두가 자신이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이런 현상을 학자들은 평균 이상 효과라고 한다.

대개 직위와 연공서열이 올라가면서 자기인식 부족, 자기망상에 빠질 확률도 함께 커진다. 성공과 자만심에 취해 그들이 볼 수 있고 봐야 하는 진실을 못 보기 때문이다.

높은 직위의 사람일수록 주변에서 정직하게 피드백을 제공해주는 사람이 거의 없고 아첨꾼만 남을 가능성이 커진다.

소위 꼰대, 자기망상은 지적 수준과 전혀 상관이 없다. 사회적 위치로 보나 직장 내에서 지적 능력으로 보나 뛰어나다고 볼 수 있는 사람들조차도 필자처럼 자신의 인상을 통찰하지 못해 자기망상을 자각하지 못한다.

스스로는 꼼꼼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 여기지만 부하나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만 옳다고 여기는 꼰대, 자기 인식이 부족해 자기망상에 빠져 있을 때 제일 마지막에 알아차리는 사람은 대체로 본인이다.

오히려 자기인식에 방해가 되는 걸림돌은 자신이 전문 지식이 많다고 생각할수록 더 커진다. 정확히 말하면 지적 겸손도가 낮은 사람이다.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잘 틀리면서도 목소리는 커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래라저래라 꼰대질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정작 지적 호기심은 낮고 여전히 자신은 아는 게 많다고 생각하며 주변 사람들을 무시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우리에게 진실을 알려줄 사람들을 주변에 둘 필요가 있다. 그동안 아내의 잔소리가 뼈아팠는데 아내가 아니고서는 해줄 수 없는 말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다행히 필자는 지적 호기심이 점점 왕성해지고 있으며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과 세상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변치 않고 있어서 대책 없는 꼰대만은 아닌 듯하다. 항상 자신을 되돌아봐야겠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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