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웃다보면
자꾸 웃다보면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3.24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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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영주 주필/부사장

세상에 많은 신()이 있지만, ‘바보의 신도 있다. 500여 년 전 에라스므스가 쓴 우신예찬’. 이 책이 바보예찬이란 제목으로 번역본이 나와 있듯이 우신(愚神)’이란 바보의 신이다.

바보의 신은 부유의 신을 아버지로, ‘청춘의 신을 어머니로, 그리고 도취무지의 두 유모의 젖을 먹고 자랐다. 이 우신은 친구들을 여러 명 가지고 있다. 추종의 신, 무분별의 신, 미식과 수면의 신 등. 이 어리석은 신들을 통해 필자는 당시 학자들의 어리석음을, 인간 세계의 일체가 어리석음을 통렬하게 쓰고 있다.

하지만 그가 우신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말하고자 한 것은 어리석음이 반드시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멸망하지 않고 작동하는 것은 심사숙고나 합리적 판단이 아닌, 열정과 망각과 같은 우신의 교리 덕분이라고 한다. 바보들 덕택에 이 세상이 이만큼이라도 굴러간다는 얘기다.

 

바보의 특징은 천진난만하게 잘 웃는다는 점이다. 도대체 심각한 경우가 없다. 그리고 집중력이 뛰어나다. 한 가지를 생각하면 다른 것은 동시에 생각할 여유가 없다.

맨발의 기봉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남해의 아름다운 바다가 보이는 한적한 시골 다랭이마을에는 어려서 열병을 앓아 나이는 40살이지만, 지능은 8살에 머문 때 묻지 않은 노총각 기봉이가 산다. 기봉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것은 엄마. 제일 잘하는 것은 달리기다.

동네 일을 하면서 얻어오는 음식을 엄마에게 빨리 가져다주고 싶은 마음에 신발도 신지 않은 채 집으로 뛰어가 밥상을 차리는 그를 보고 동네 사람들은 맨발의 기봉이라고 부른다. 어려운 생활이지만, 그의 얼굴에는 그늘 한 점 없다. 그는 항상 밝고 환한 웃음을 지을 뿐이다.

맨발의 기봉이를 보면 우리의 삶을 생각해 보게 된다. 기봉이보다 못하지 않은 삶의 여건이지만, 마음은 늘 빈곤하다. 무엇보다 기봉이 같은 웃음을 지을 수 없다.

 

어떤 삶이 좋은 것인지, 정답이 어디 있으랴만. 동서고금의 진리는 바보같이 사는 것이라고 한다.

정말 바보처럼 살다간 법정 스님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종교는 기독교, 불교, 천주교가 아니다. 바로 친절이다라고 했는데, 이 말은 산에 있는 절이 아니라 친절하게 살라는 말이다.

법정은 본래 천화(天花)’를 하고 싶었다. 천화란 고승이 임종을 앞두고 홀로 깊은 산 속으로 걸어가다가 힘이 없어 쓰러지면 주변에 나뭇잎을 주워 모아 자신을 덮어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즉 깊은 산속에서 아무도 몰래 남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생을 마감하기에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법정은 아무 것도 남기지 않았다. 유언으로 내가 죽거든 비석도 무덤도 만들지 말라고 했다. 우리들 기억엔 그의 웃음만이 남아있을 뿐. 그는 참으로 맑고 향기로운 바보다.

 

우리 제주 사람들은 유독 웃음이 적다. 바보처럼 순수한 웃음은 더더욱 없다. 아니 웃지 못한다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삶의 굴곡을 지나다 보면 머릿속은 언제나 복잡하다. 특히 제주 사람들은 지능지수가 높은 데다 좁은 섬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다 보니 남을 속이거나 어려움을 주는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웃을 수 없게 된 걸까.

바보가 똑똑한 사람처럼 살 수는 없다. 아이가 어른처럼 살 수 없고 약한 사람이 강한 사람처럼 행동하기 어렵다. 하지만 똑똑한 사람이 바보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산다면 더욱 지혜로운 사람이 되지 않을까. 어른이 아이처럼 활짝 웃으면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않을까.

요즘 세상 살맛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어느 날 엄마가 기봉이에게 묻는다. “기봉아, 넌 사는 게 그렇게 좋으냐?” 기봉이는 지체 없이 대답한다. “”. 활짝 웃는 기봉이의 대답은 언제나 이렇게 간단명료하다.

내가 바보가 되면 친구가 모인다’(강민수 저, 영광도서)고 한다. 오늘부터 웃는 연습을 해볼까. 거울을 보며 자꾸 웃다 보면 언젠가는 바보처럼 웃게 된다고 하니까.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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