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는 선 하나에 깃든 70여 년의 아픔
비틀거리는 선 하나에 깃든 70여 년의 아픔
  • 김나영 기자
  • 승인 2019.02.14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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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부터 4월 14일까지 제주4‧3평화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제주4‧3 생존희생자 그림기록전: 어쩌면 잊혀졌을 풍경’을 개최
부순여 작 '감저 다섯개' 중

“언니 오빠가 모두 잡혀가고 혼자 남았다가 다리에 관통상을 입고 친척의 도움으로 동굴에 숨었다. 해가 저문 정월의 산 속은 추웠고 상처가 깊어 고통스러웠지만 무엇보다 힘든 건 이제 나 혼자라는 생각이었다.”(부순여 제주4‧3 생존희생자의 그림 설명 중)

제주4‧3 생존희생자들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미술의 힘으로 치유하고 기록한 ‘그림채록’ 작업의 결과물이 마침내 공개된다.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양조훈)과 제주4‧3 70주년기념사업위원회(상임공동대표 강정효)는 16일부터 4월 14일까지 제주4‧3평화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제주4‧3 생존희생자 그림기록전: 어쩌면 잊혀졌을 풍경’을 개최한다고 14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재단과 위원회가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4‧3 생존희생자 18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그림채록 작업의 결과물을 공개하는 자리다. 전시물은 생존희생자이 완성한 작품 원화와 작업현장 사진, 인터뷰 영상, 아카이브 작품 등 150여 점이다.

그림채록 작업은 도내 작가 9명이 생존희생자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기억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생존자들은 처음에는 기억을 꺼내 아픔을 마주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거나 연필을 잡지 않으려는 경우도 있었지만, 점차 그들의 기억과 정서를 구체화하고 심리적 안전감을 보이는 모습을 보였다는 평이다.

강순덕 생존희생자는 “지금이라도 멀쩡한 손과 다리로 살아갈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며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8살 때 얘기를 하면 눈물이 나온다. 이제는 집에서 그림 그릴 때가 제일 좋다”고 밝혔다.

김유경 그림채록 자문위원은 “생존자들의 그림은 사진처럼 사실적이진 않지만 비틀거리는 선 하나에 70여 년의 아픔과 눈물, 희생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배어있다”며 “조금 더 일찍 그림채록이 진행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나영 기자  kny80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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