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동과 압록강, 그리고 만주의 지정학 앞에서
단동과 압록강, 그리고 만주의 지정학 앞에서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2.06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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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철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논설위원

나는 다음 달부터 1년 동안 중국 단동(丹東)에 있는 요동대학교의 한조(韓朝)대학에서 연구년을 보낼 계획이다. 사실 몇 해 전부터 그곳에서 연구년을 보낼 구상을 하고 있었다. 우선 한국문학도로서 일제강점기와 그 후 만주를 중심으로 전개된 근대문학에 대한 연구의 일환으로, 국경 접경 지역인 압록강 일대를 삶의 터전으로 삼은 우리 민족 구성원의 생생한 삶의 정동(情動)을 살피고 싶다.

사실 간혹 방문한 적 있는 단동을 중심으로 한 압록강은 어디까지나 여행자의 시선으로 스쳐간 국경 도시를 이루는 낯선 풍경 중 하나일 뿐이었다. 물론 이 풍경이 지닌 역사는 결코 예사롭지 않다. 조선 후기부터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이주해간 조선 이주민의 삶이 극명히 보여주듯 지금의 단동(예전에는 안동(安東)’이라 불렸음)은 조선과 중국을 이어주는 매우 중요한 교통의 요충지였다.

실학의 대가인 박지원의 연행록 열하일기도강록에는 압록강을 건너면서 직접 보고 체험한 것이 상세히 기록돼 있는데, 박지원이 압록강을 건너면서 받은 충격뿐만 아니라 도강 후 조선과 중국의 접경 지대에 펼쳐진 드넓은 요동 벌판에 대한 경이로움은 이 지역의 문화적 및 지정학적 중요성을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물론 이 지역을 상기할 때 우리가 망각해서 안 될 것은 일제강점기 아래 항일혁명이 지속적으로 펼쳐졌다는 사실이다. 얼마나 많은 항일혁명가들이 목숨을 내 걸고 이 접경 지역을 거점으로 민족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압록강을 건넜는지 모른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간과해서 안 되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 있다. 압록강 일대뿐만 아니라 중국과의 다른 접경 지역을 포함한 만주 일대에서 가열차게 전개된 항일혁명은 마오쩌둥을 비롯한 중국 공산당 혁명가들과 함께 연대한 이른 바 조중혈맹(朝中血盟)의 굳건한 토대 아래 중국혁명의 도정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것은 만주 지역이 갖는 항일혁명사에서 소홀히 여길 수 없는 역사적 진실을 말해준다. 무엇보다 이 지역을 무대로 펼쳐진 항일혁명의 주체에 대한 실증적 연구가 축적되면서 조선의 민족주의자들 이외에도 사회주의자들의 항일혁명 활동이 갖는 역사적 가치가 주목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 지역은 조선의 친일협력자들이 적극적 친일 활동을 통해 항일혁명을 탄압하는 반민족적 역사의 무대였고 제국의 지배자들이 대륙의 식민경영을 위한 교통의 전초기지로서 각종 식민지배 전략을 세웠던 곳이기도 하다. 특히 당시 부산을 기점으로 하여 경성을 통과한 철도 경의선은 신의주를 거쳐 압록강 철교를 지나 안동(지금의 단동)을 통과하여 만주국의 수도인 신경(지금의 장춘)을 지나 하얼빈에 이르고 이 철도 노선은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만나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제국의 교통인바 압록강 일대는 식민지 경영을 위해 일본 제국이 대륙으로 뻗어나가기 위한 매우 중요한 교통의 요충지인 셈이다. 바로 그 길목에 단동이 위치해 있다.

그래서일까. 단동과 압록강은 한국전쟁 와중에서도 전략적으로 중요한 거점이었다. 한국전쟁 도중 미군의 폭격으로 끊어진 압록강 철교는 그 단적인 면을 증언해준다.

파괴된 압록강 철교는 한국전쟁의 성격을 은연중 말해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단 그것의 최우선적 목적이 전쟁과 직결된 것이라고 하지만, 압록강 철교의 파괴는 압록강을 경계로 한 대륙의 교통에 치명적 손상을 입음으로써 이것은 그동안 대륙과 이어진 역사의 실재적 삶으로서 현장이 단절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이러니컬한 일이지만, 일제에 의해 그 식민지배의 일환으로 가설된(1909~1911) 압록강 철교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새로운 제국의 지배자로 등장한 미국의 반공주의와 팍스아메리카나를 위해 파괴되는(1950) 운명에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압록강 철교의 가설과 파괴는 그만큼 압록강이 지정학적으로 우리와 대륙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이것은 과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최근 남과 북의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압록강은 우리에게 어떠한 지혜와 실천을 요구하고 있을까. 관광하는 외부자의 시선이 아니라 내부자의 시선에서 중국의 단동과 압록강 일대 및 만주를 인식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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