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論
이발論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1.15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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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수 시인·문화기획가

우리는 머리털을 지극히 소중하게 여기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신체의 모든 것은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니 함부로 다루지 말라고 가르치는 유교 문화의 영향일 수도 있지만, 민간 풍습에서도 머리털은 우리의 영혼이 깃든 신령스러운 신체라는 인식이 있다.

혹시 타향에서 죽음을 맞이하거나 귀향을 장담할 수 없는 곳으로 떠날 때는 머리털을 자르거나 손톱과 발톱을 깎아 집에 남겨두는 풍습이 있었다.

천년 먹은 쥐가 사람의 손톱을 먹고 그 사람으로 변신하여 그 사람 행세를 한다는 식의 전설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래서 혹시 시신을 모셔오지 못할 경우에는 그 사람의 머리털이나 손톱과 발톱만으로도 장례를 치르곤 했다.

요즘에는 머리털이나 손톱과 발톱을 가꾸는 것이 하나의 사업 아이템이 되어 인기를 끌고 있기도 하다. ‘미용실이나 이발소’, 그리고 네일 아트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미용실이나 네일 아트는 여성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이고 이발소는 남성들이 주로 이용하는 공간이다.

이 중에서 미용실이나 네일 아트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진화를 계속하고 있는데, ‘이발소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어 먼 추억 속의 공간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요즘에는 나이든 할아버지나 가는 곳으로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다. 머리를 가꾸는 것에도 세대 차이가 있고 시대의 흐름이 반영되는 것이다.

이발소가 사라지고 있는 것은 이발소라는 공간이 가지고 있는 장소성이 사라지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장소성은 우리가 특정 장소에 대해 가진 감정을 의미한다. 이발소에 대한 추억과 감정이 사라지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미용실에 대한 장소성이 길러지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장소성의 차이가 세대별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털은 우리의 영혼 자체이고 그 사람 자체라는 인식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하나같이 머리털을 가꾸는 데 신경을 쓴다. 머리털을 다듬는 것을 보고 자존심을 세운다고 표현하는 것도 이런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나도 한 달에 한 번씩 신성한 의식을 치르듯이 머리를 자르러 이발소에 간다. 예전에는 미용실을 다녔는데 이발소에는 미용실과는 다른 푸근함이 있다. 젊은 세대나 여성들은 미용실에서 그런 푸근함과 새로움을 느끼는 것이리라. 그래서인지 아들 녀석에게 이발소 가자고 했다가 괜히 무안만 당했다. 요즘에 누가 이발소에 가느냐는 항변과 함께.

예전에는 이발소는 남자들에게, 미용실은 여자들에게 새로운 정보의 매개소이면서 사람들과 교류가 이뤄지는 사랑방 역할을 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발소는 나이든 남자들이 가는 곳이고, 미용실은 여성들과 젊은 세대들이 가는 곳이라는 구분이 만들어진 것 같다. 이발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많이 퍼져 있는 것이다.

나도 이발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연히 직장 근처 이발소에 갔다가 그곳의 단골이 되었다. 그곳에 가면 40년 경력의 이발사 할아버지와 머리를 감겨주고 면도를 해주시는 할머니를 만날 수 있다. 이발하는 데 그렇게 정성스러울 수가 없다. 이발하는 동안 주고받는 입담은 덤이다. 삶의 지혜랄까, 그동안 그분들이 이발소를 운영하면서 겪은 경험담이 그렇게 구수하고 재미있을 수가 없다. 어린 시절 이발을 함께 하던 아버지가 떠올라서 더 푸근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마다 자기만의 장소성이 깃들어 있는 공간들이 있다. 이발하는 동안 할아버지 이발사는 내 영혼이 깃든 머리털을 소중하게 다루며 동시에 내 마음을 다듬어 주고 있는 것 같다는 안도감이 든다. 이번에 갔을 때는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아드님이 이발소를 물려받아 이어갈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가업으로 이어지는 삶의 궤적이 너무 아름답고 경건해 보이기도 했다. 다음에는 아들 녀석과 함께 와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했다. ‘장소성을 같이 느끼며 영혼의 교류를 느끼기에 이만한 곳이 있으랴.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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