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에 보이는 덕(德)
세밑에 보이는 덕(德)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12.23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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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호 시인·전 중등교장·칼럼니스트

형님, 감자 한 박스 갖고 갑서. 비쌀 때 드려야 드리는 것 닮수다.”

시골에 사는 동생이 봄 감자를 자동차 트렁크에 싣는다. 도시생활은 시골 삶의 어려움에 무딜 때가 많다. 시내로 오는 동안 내내 비쌀 때 드려야 드리는 것 닮는다는 말이 귓바퀴를 맴돈다. 그 속뜻이 알듯하면서도 뚜렷이 잡히지 않는다. 땀을 심고 캐내는 농산물, 아깝지 않는 게 있겠는가.

 

올봄(2018)에는 감자가 유난히도 비쌌었다. 감자를 식재료로 쓰는 요식업들의 볼멘소리가 크게 보도 될 정도이었다. 그 감자를 한 박스나 선뜻 내주는 동생의 마음을 어찌 헤아릴까. 이 감자를 오래 두면서 혼자서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현관에서는 드나들다 남의 눈에 띄기 쉽다. 부엌 베란다로 옮겨다 놓았다.

 

얼마 후 그 상자를 우연히 보았다. 남은 감자가 몇 개 밖에 없다. 지인들과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아내의 얘기. 오래 두면 싹이 나서 버리게 된다면서, 아까운 것일수록 일찍 나누어 먹어야한다면서, 왜 그런 걸 시시콜콜 다 묻느냐면서 아내는 되받는다. ‘당신의 덕()이 그 정도 밖에 되지 않느냐는 어조이다. 갑자기 얼굴이 뜨거워진다.

 

()이란 무엇일까?

공자(孔子)삶의 근본은 덕()’이라고 했다. 그의 ()보따리를 풀어 보자. (), (), (), (), (), (), ()가 마치 종합선물세트의 내용물처럼 나온다.

 

()()+()’이다. ‘둘 이상의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마음이다. 즉 시민의식(citizenship)이다. ()먹을 것()이 생기면 혼자서() 먹지 말라이다. 안중근 의사(義士)이로움()이 보일 땐 의()를 떠올려라(見利思義)’했다. ()‘(아무리 없이 살아도) 넉넉함()을 보여라()’이다. ‘내 살기가 어려운데의 생각은 예()를 실행 못한다. ()나의 앎()에 햇빛()을 비추어 그림자가 아니 생기게 함이다. 고시(考試)를 거쳐 법정(法政)을 다루는 사람들도 그의 앎()의 그림자 때문에 수감(收監)된다. ()는 있으나 지()가 없어서이다. ()사람()으로 살면서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책임을 말한다. 그런 책임에서 믿음()이 쌓인다.

 

이 모든 내용물들을 싸안고 있는 덕(), 덕의 실제는 무엇일까?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선비()의 마음()’이 덕()이다. 농경 시대 이전에는 사람들은 수렵으로 살았었다. 새를 잡는 그물()이나 물고기를 잡는 그물()로써 새나 물고기를 잡으며 살았었다. 물고기와 새를 다 잡는 그물을 망라(網羅)라 한다. 어떻든, 새나 물고기를 조금밖에 못 잡아도 이웃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이것이 덕이다. 밭일을 나갈 때 길목에서 동네 사람과 마주친다. 이웃마을에 큰일(大小朞)을 보고 온다면서 구덕에서 꺼내어 주는 떡, 이것이 덕()이다. ‘먹을 것을 나누어 줌이 덕()의 실제이다.

 

선친자(先親慈)께서는 여덟 남매를 낳아 키우셨다. 밭에 나가시어 집에 안 계실 때, 동네 어느 집에서 간밤에 제사를 지냈다면서 떡을 가져왔다. 떡이 눈앞에 있으니 배가 더 고프다. 아무리 침이 넘어가도, 가르침 받은 그대로 해야 한다. 손톱만큼도 건드리면 아니 된다. 밭에서 돌아오신 어머니가 온 그대로를 보셔야 한다. ‘받은 만큼·더 나중에 되갚아야 한다.’ 이것이 어머니의 덕()이었다.

 

비쌀수록 나누어 먹는다.

받은 덕()들을 되돌아보는

세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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