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는
3월에는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6.02.25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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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얼자(孤臣孼子)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고신(孤臣)은 임금의 총애를 받지 못하고 멀리 유배당해 있거나 조정으로부터 소외당한 신하를 말하고, 얼자(孼子)는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서자로 태어난 자식을 가리킨다. 맹자는 이 사자성어를 통해 남보다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이 결국에는 다른 사람보다 더 위대해질 수 있음을 강조했다. 2500년전 맹자 사상의 일부다. 그런데 요즘,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이 사자성어를 내세우면 무식한 놈, 또는 실정 모르는 헛소리라고 욕먹기 십상이다. 우리사회가 기득권이라는 거대 세력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모든 권력과 자본, 나아가 정치·경제·사회의 영향력을 이들이 장악하고 있다. 그런 현상을 빗대 ‘수저론’이 회자되고 있다. 이른바 자신이 속한 계층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수저계급론'이 등장했다. 수저로 출신 환경을 빗대는 표현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mouth·부유한 가정 출신이다)는 영어 숙어에서 비롯됐다. 부모의 재산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흙 묻은 수저)로 불린다. ‘수저론’은 ‘헬조선’으로 상징되는 우리사회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계층 간 이동이 힘들다는 열패감에서 나왔다.

 

#제주사회라고 예외가 아니다. 관광산업이 급속하게 팽창하면서 이로 인한 갈등이 곳곳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1년에 1300만명이라는 수많은 외부의 사람들이 제주를 찾지만 정작 그 혜택은 소수의 대형업체에 고스란히 들어가고, 들러리는 항상 지역 영세업체들이다. 개발바람에 아파트를 비롯해 초고층 빌딩들이 우후죽순식으로 들어서면서 이웃사이는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도둑과 거지, 그리고 대문 없이 지내던 이웃 간 인정은 오간데 없다. 과연 제주가 앞으로 사회구성원들을 통합시켜 ‘공공의 선(善)’을 추구해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제주의 땅값은 말 그대로 미친 듯 치솟고 있다. 제주 땅에서 금맥이 발견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갑자기 석유가 펑펑 쏟아지는 것도 아닌데 땅값 폭등세가 멈출 줄 모른다. 그 내막을 들어다 보면 제주 내부의 필요와 수요에 의한 게 아니라 ’외부요인들‘ 때문이다. 타지방에서 돈 좀 만진다는 사람들이 대거 제주로 들어와 돈 될 만한 땅 매집에 여념이 없다. 한 예로 최근 제주시 애월읍에 소재한 임야 285㎡(86.4평) 경매에는 전국에서 77명이 몰려 전국 최다 응찰자 수를 기록했다. 낙찰가는 감정가(734만원)의 7배에 육박하는 5040만원까지 치솟았다. 제주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엄두도 못 낼 소설 같은 이야기가 주변에서 버젓이 이뤄지고 있다. 결국 제주사회에 박탈감과 상실감을 키우고, 사회공동체를 금가게 만들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가 기본인 우리사회에서 관광산업과 토지거래 등 사적인 영역에 관(官)이 주도적으로 개입해 모든 행위를 이끌기는 어렵다. 또 그럴 수도 없다. 그러나 관은 일정부문 시장에 개입, 경제 질서의 왜곡을 막아야 한다. 그래서 독과점 규제라는 제도가 생기고, 부당거래행위를 제한하는 것이다. 최근 일명 '남양유업 방지법'으로 일컬어지는 ‘대리점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 법은 내용적으로 미흡한 점이 많지만, 나름대로 우리사회가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은 제대로 짚어 줬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게 한다. 그러나 이 사회를 바르게 끌어가야 중심은 밑바닥에서 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다수의 서민들이다. 지난해 제주에서도 상영돼 많은 호평을 받았던 영화 ’베테랑‘. 전국적으로는 1300만 관객을 동원하는 대기록을 남겼다. 영화 ’베테랑‘은 금수저보다 한 수 위인 '다이아몬드 수저'인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의 악행을 흙수저 형사 서도철(황정민)이 응징하는 내용이다. 1300만명의 국민이 이 영화에 빠진 이유는 단 하나. 지긋지긋하게 신물나는 우리사회 불평등과 기득권에 대한 흙수저들의 저항의 발로다. 당장 금수저가 될 수는 없지만. 잘못에, 부정에 굴복하지 말자는 것이다. '베테랑'의 서도철이 흙수저들에 던졌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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