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기억들을 왜 되새기랴
아픈 기억들을 왜 되새기랴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8.12.0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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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도시에서는 추위가 하도 심해서 말()을 하면 말이 얼어붙는다. 그런데 그 말은 겨울이 지나 눈이 녹아야 들을 수 있게 된다. 보통 겨울에 말하면 다음 해 여름에 듣는다.”

대비열전(對比列傳, 플루타크영웅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믿기지 않는 허황된 얘기이지만 엄청나게 추운 도시라는 점을 강조하다 보니 이런 표현이 됐을 것이다.

지난 주말은 전국이 꽁꽁 얼어붙었다. 제주도에도 눈발이 날렸다. 신문과 방송은 벌써부터 동장군(冬將軍)이 왔다고들 한다. 그러면서 이번 주에는 다소 풀리겠지만 여전히 추운 날씨가 계속될 전망이란다. 단순히 기온만 낮은 게 아니다. 바람까지 강하게 불어 체감온도가 떨어지면서 몸과 마음을 더 움츠러들게 하는 요즘이다.

제주도에서 무슨 추위 타령이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유가 있다. 제주지역 기온이 분명히 영상인데도 서울보다 더 춥게 느끼는 건 몸 주변을 담요처럼 감싸는 공기층이 바람이 불면서 흩어져 체온을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추위와 함께 어느 덧 한 해를 마무리하는 해넘이 날, ‘세밑이 다가왔다. 순우리말인 해밑으로도 불리는 이 날을 앞두고 누구나 감회에 젖어 지난 일들을 되돌아 보게 되는 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리라.

톨스토이는 한 해의 마지막에 가서 그 해의 처음보다 더 나아진 자신을 발견하는 것을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라고 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곡절을 겪기도 하고, 잘잘못을 제대로 가리지 못한 경우도 물론 있을테지만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면서 조그만 발전이라도 이뤄내는 것이 곧 행복의 조건이라는 뜻일 게다. 우리 모두가 깊이 새겨들을 만한 얘기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늘 그러하듯, 가슴 뿌듯한 즐거움이나 목표를 성취한 보람보다는 별로 이룬 것도 없이 또 다시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과 회한의 마음부터 앞서는 게 현실이다. 더욱이 경제 사정이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모두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각박하고 힘든 한 해를 보내고 있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기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만치 적잖은 상실감과 좌절에 빠져있는 이웃들이 많을 것이다.

이럴 때. 다소 여유있는 사람들이 서로 돕고 나누면 이러한 소외계층은 위안을 받고 생활의 의욕을 느낄 것이다. 삶의 고단한 짐을 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크리스마스 트리나 송년회 회식이 어색하기만 하다. 나눔의 손길만이 필요할 뿐이다.

제주일보 주말판(127일자)의 주제는 한 해의 끝자락, 12월 나눔의 달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한적십자사, 사회복지협의회, 구세군자선냄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활동을 소개했다.

연말연시를 맞아 주변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다양한 모금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들 단체에 관심을 가져보자. 우리에게는 착한 일을 서로 권하고(德業相勸, 덕업상권), 어려운 일에는 서로 도움을 주는(患難相恤, 환난상휼) 아름다운 덕목이 있다. 이 겨울 한파를 물리칠 아름다운 사람들이 수없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해 본다.

 

지난 한 해. 정치는 포퓰리즘의 덫에 빠져버리고, 고용 위기와 고물가가 쉴 틈 없이 우리를 짓눌렀다. 슬프고 아픈 한 해였다. 김정은만 한라산에 오면 이 모든 게 다 풀릴까. 일편단심 북녘만 바라보는 이 상황이 희극이 될 건가 비극이 될 건가.

내년에도 나라 안팎 사정이 호락호락하지 않으리라. 우리 삶도 팍팍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지레 겁을 먹고 움츠러들 필요 없다. 위기는 곧 기회라 하지 않는가. 각자 서 있는 곳에서 충실하게 살다 보면 어느날 아픔은 기쁨으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흔히들 인간은 아픈 기억을 반추(反芻)하기 때문에 불행해진다고 한다.

가슴 아픈 기억들을 왜 되새기랴. 이 또한 지나가는 것인데. 올 한 해 가슴속에 남은 상처와 아픈 기억들을 훌훌 털어내버리자. 플루타크영웅전의 얘기처럼 이 겨울에 하는 말이 얼어붙더라도 내년 여름엔 알게 될 것이다.

그 때. 톨스토이 표현처럼 우리 주위 사람들에게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돼 있다면 그것이 곧 행복이 아니겠는가.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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