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삶의 원초적 모습을 지닌 남인도를 찾아서(18)-판차 라타스 사원
남인도를 여행한지 13일째, 오늘로 모든 여행 일정을 마치고 내일이면 인도를 떠나게 됩니다. 엊그제 온 듯한데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지났습니다.
우리 일행을 안내한 가이드는 “이렇게 바쁘게, 그것도 이런 힘든 오지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을 처음 만났다”며 농담을 합니다. 하긴 그런 말을 들을 정도로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강행군하며 남인도의 속살을 맘껏 둘러봤습니다.
지난 북인도 여행에서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인도 문화를 보면서 이전의 유적답사 때보다 많은 공부를 하고 좋은 사진도 많이 남길 수 있었습니다. 힘들고 지쳤던 순간도 있었지만, 여행을 마친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큽니다.
오늘은 마하발리푸람(Mahabalipuram) 지역의 건축과 조각들을 돌아본다고 합니다. 이번 여행 내내 사원과 왕궁, 조각들을 접하다 보니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더니 가이드가 기대를 해 보라고 합니다.
차를 타고 길을 나섰습니다.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야산 지대를 지나 사막 같은 지역에 도착했는데 한 장소에 제법 많은 사람이 몰려 있습니다. 이곳이 바로 이번 일정의 목적지인 판차 라타스(Pancha rathas) 사원의 입구라고 합니다. 이 사원은 마하발리푸람에서 남쪽으로 수백m 떨어진 모래땅에 세워진 석조사원입니다.
이른 아침인데 수학여행을 온 인도 학생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유명 유적지마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많은 학생이 노트 등을 들고 옛 선조의 문화유산을 공부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인도 문화의 저력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짐작이 됩니다.
북적이는 학생들 사이를 지나 사원에 들어서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마치 동화 속 나라에 들어온 듯 이채로운 풍경이 펼쳐졌기 때문입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화강암들이 늘어서 있는데 그 화강암을 깎아 만든 사원과 코끼리, 사자 등의 동물 조각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쓰고 있던 안경을 닦고 다시 자세히 볼 만큼 인상적인 풍경입니다.
한 덩어리 돌로 만들어진 듯한 사원이 5개나 모여 있는데 ‘라타’라고 불린답니다. 라타는 수레나 마차 등을 뜻하는 데 신을 모신 사원이나 타고 다니는 수레를 일컫는 다고 합니다.
이 5개의 라타에 새겨진 건축형식은 남인도 목조 사원을 본뜬 것이랍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고 지금은 팔라비 왕조 건축을 보여주는 바위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라타들은 각각 ‘드라우파디(Draupadi)’, ‘아르주나(Arjuna)’, ‘비마(Bhima)’, ‘다르마라자(Dharmaraja)’, ‘나쿨라 사하데바(Nakula Sahadeva)’라고 하는데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가장 북쪽의 드라우파디 라타는 사각형의 뾰족한 지붕으로, 나쿨라 사하데바 라타는 전방후원형(앞쪽은 네모, 뒤쪽은 둥근 형태)의 차이티아(예배 대상을 받드는 장소)로, 아르주나 라타와 다르마라자 라타는 남방형의 비마나(본당)로, 비마 라타는 고푸람 형태의 사당으로 돼 있다고 가이드가 라타들의 특징을 설명하는데 사실 이해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라타의 벽면에는 인도의 다른 사원들처럼 신들의 모습이 조각돼 있는데 어느 여행자가 이것을 보고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1300년 전 판차 라타스가 만들어졌다면 우리나라 신라 시대 김대성이 전생(前生)의 부모를 위해 지었다던 석굴암의 조성 시기와 비슷한 것 같아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역시 그랬다. 이 사원 외벽을 꾸민 부조상들은 경주 석굴암에 있는 보살상들만큼이나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어떻게 신라와 멀리 떨어진 남인도에서 비슷한 조각상들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한 시대를 산 석공들이 시공을 초월한 것들이 아닐까.”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도착하자 사진으로 찍어 둔 라타 벽면의 부조상을 살펴봤습니다. 여행자의 글을 읽고 느끼는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진 속 부조상을 자세히 보니 1300년 전에 만들어진 조각임에도 너무도 정교합니다. 설령 석굴암의 부조와 차이가 있다고 해도 그 여행자는 형태 면에서 비슷함을 느낀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봤습니다.
석굴을 파서 만든 사원, 판차 라타스. 비록 규모는 작았지만, 지금껏 봐온 여느 사원과도 다른 독특한 모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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