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이 목구멍…”과 如是我聞
“냉면이 목구멍…”과 如是我聞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8.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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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취재원의 발언을 인용할 때, 흔히 쓰는 서술은 “~라고 말했다이다. 발언 내용이 길 경우, 거듭 “~라고 말했다고 반복할 수는 없어서 “~라고 역설했다”, “~라고 강조했다는 표현도 섞어 쓰기도 한다.

힐난했다’, ‘면박했다등을 통해 주변 분위기나 뉘앙스를 전달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히 좋은 표현들은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강한 톤으로 도민들에게 사과합니다고 했는데 기자가 그는 강한 톤으로 도민들에게 사과합니다라고 역설했다”, 혹은 강조했다고 썼다고 해보자. 이를 보는 독자는 어떤 느낌일까. 십중팔구는 사과합니다하는 그의 말(팩트)보다 역설과 강조라는 말에 부담을 가질 것이다. 기자들이 “~라고 말했다라는 가치 중립적인 표현을 즐겨 사용하는 것은 그런 때문이다. 기자 개인의 감정을 섞지 않고 사실의 전달에 객관적 태도를 유지하려는 노력이다.

 

이와 달리 불경(佛經)“~라고 들었다는 표현으로 사실의 전달을 위해 애쓰고 있다. ‘여시아문(如是我聞)’, 이렇게 나는 들었다는 표현 방식이다.

부처님 열반 후 제자들은 부처님 말씀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인다. 그 자리에서 제자들은 부처님의 말을 가장 가까이서 들어서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 불리는 아난다(阿難陀)로 하여금 부처님 말씀을 말하도록 하는데, 아난다는 부처님 말 한 마디를 전할 때마다 여시아문’, “이렇게 나는 들었다고 시작한다.

아난다가 부처님이 이렇게 말했다고 전하지 않고 이렇게 나는 들었다며 말을 시작한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부처님이 그렇게 말했는지의 사실(팩트) 여부는 내가 함부로 단정할 수 없다.

나는 단지 내 이해력의 범위 내에서 그렇게 들었을 뿐이라는 사실의 객관을 유지하려는 겸손(謙遜)’이었다. 만에 하나 부처님의 말씀을 잘못 들었을 수도 있어서 말했다는 표현을 쓰지 않은 것이다.

 

사실 말했다들었다중 어느 것이 더 객관적인 서술 태도인지는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양쪽 다 오용되거나 악용될 소지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근 한 신문 기사를 보자. 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평양 남북회담 당시) 옥류관 행사에서 대기업 총수들이 냉면을 먹는 자리에서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아니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라고 했다. 보고받았느냐라고 조명균 통일부 장관에게 물었다.

이에 조 장관이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고 답했다는 것이 신문 보도의 골자다.

냉면을 먹을 때 리 위원장은 북한 김능오 평양시 노동당위원장과 함께 이재용 삼성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손경식 경총회장,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등 6명과 한 자리에 앉았다. 정 의원이나 조 장관은 그 자리에 없었다.

그런데도 조 장관이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는 건 이 6명 중 한 사람에게 들었거나 한 두 다리 거쳐 전해 들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정 의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논란이 되자 대한상의 회장은 그런 얘기를 이러니저러니 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했고, 경총회장은 들은 바 없다고 했고, 나머지 현장에 있던 인사들은 말이 없다고 한다.

정작 현장에서 들은 바 없었던 여야 정치권이 그렇게 말했다그렇게 말 안 했다니 하고 싸움판을 벌였다.

그러자 TV 방송도 나섰다. 모 기업 총수가 냉면 사리를 추가로 시켜 먹는 걸 본 리 위원장이 웃으면서 뭘 하신 게 있다고 (냉면을) 더 드십니까?”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는 발언보다는 약하지만 다소 이죽거리는 느낌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리 위원장이 냉면을 먹는 대기업 총수들에게 정확하게 무슨 말을 했는지를 이를 전달하려는 사람들은 사실(팩트) 앞에 겸손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 사회를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가치 기준이다.

그러나 그 표현의 자유는 사실을 존중할 때, 비로소 꽃 필 수 있다. ‘냉면이 목구멍논란을 보며 기자의 윤리와 아난다가 행했던 여시아문겸손을 생각한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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