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조리(吾照里) 마을은 안녕하신가
오조리(吾照里) 마을은 안녕하신가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10.28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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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중훈 시인·제주문화창의연구회장

멀리 육지에 사는 친구에게서 편지가 왔다. 해마다 제주를 찾는 그다. 그때마다 내가 사는 오조리 마을 방문도 빼놓지 않는다.

그러던 그의 제주 방문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끊겼다. 그 대신 오조리 마을은 안녕하신가라는 안부 편지가 온 것이다. 그의 품성만큼 또박또박 옮겨 쓴 손편지엔 오조리 마을을 사랑하는 온기로 가득했다.

기실 오조리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들이 어찌 이 친구뿐일까.

2017년도 처음 제주도를 찾았을 때 오조리를 방문하면서 인연이 된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 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2008년은 물론 그 이후에도 줄곧 오조리를 찾은 이유도,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노래한 시인 이생진 선생이 오조리 식산봉 자락 오두막 같은 집에서 1년 여를 머물렀던 이유도, 아예 2년 전부터 오조리에 정착해 사는 여행 작가인 이병률 시인과 2018년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원하 시인의 사연도, 그토록 오조리에 살기를 원했으나 머무를 집이 없어 발길을 돌려야만 했던 계간문예 발견의 발행인이며 주필이신 황학주 시인의 사연도 오조리는 역시 아름다움을 꿈꾸는 이들의 로망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그들은 오조리에 그토록 매료된 것일까.

오래 전 작고하신 소설가 오성찬 선생이 펴낸 제주의 마을 시리즈에서 오조리 마을은 바닷가에서 술래잡기하던 누이가 돌담 곁에 숨은 듯 앉아 있는 마을이다라고 표현할 만큼 오조리는 누이처럼 따뜻하고 인정 넘치는 마을이다. 일출봉에 해가 뜨는 아침, 누구든 오조리 마을을 찾아보라. 마을 앞 내수면에 담긴 단아한 모습의 오조리를, 거울처럼 맑은 수면 위에 뜬 자신의 모습과 함께 더불어 비치는 내 자신의 양심을, 그래서 그런지 오조리는 제주올레 1·2코스성산~오조 지질트레일 코스는 물론 드라마 공항 가는 길의 명장면도 이 마을을 비껴가지 못했다.

무너질 듯 무너지지 않은 돌담 사이로 나지막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마을, 잘 익은 밥 냄새가 뽀얀 연기로 피어날 때쯤이면 게으른 닭들마저 힘찬 기지개로 아침을 여는 마을, 굽이굽이 돌아드는 골목길마다 어느 곳 하나 여유로움이 묻어나지 않은 곳이 없을 만큼 비록 좁고 가느다란 골목길이지만 조상들이 살아왔던 모습에 상처 입히는 일은 하지 말자는 자존심 하나로 사는 마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마을 사람들은 삶이 다소 불편할지라도 우리 선대들이 살아왔던 모습 그대로 ‘2층집 이상은 제발 짓지 말자!’, ‘마을 안길도 더 넓히지 말고 살자!’, ‘오조리(吾照里)라는 마을 이름이 주는 의미처럼 나를 돌아보고 우리 스스로를 지키면서 살자!’고 무언의 약속을 실천하며 살아온 역사 또한 600년이다.

그런데 이 마을에 안녕치 못한 일이 생겼다. 600년 전통이 무너지고 말았다. 마을의 중심부에 600평에 가까운 4층짜리 건물 2동이 을씨년스럽게 들어섰기 때문이다.

어느 낯선 부동산업자가 마을의 전통과 아름다운 경관을 박살 내고 만 것이다. 이 과정에는 관계 기관의 건축심의위원회 심의 절차도 있었을 터이다. 또 마을의 책임자인 이장의 의견을 참고했을 법도 하다. 그렇지만 마을 이장과는 한 마디 의견 타진도 없이 이뤄진 행위라니 기가 찰 일이다.

600년간 지켜온 마을 전통이 하루아침에 영혼 없는 마을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까. 요즘 한창 일고 있는 문화마을 만들기 운동이니, ‘원도심 살리기 운동이니 하는 제주도정의 정책은 어느 곳, 어떤 마을에 적용되는 정책인지, 건축심의위원회는 왜 존재하는 건지, 또 이런 원칙 없는 행정행위는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지 우리는 실로 그 답을 듣고 싶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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