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채 부지런 20년
골채 부지런 20년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10.21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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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태 시인·다층 편집주간

제주도 속담에 골채 부지런이라는 말이 있다.

골채는 삼태기를 뜻하는 제주어인데 속담의 뜻은 헛수고 혹은 실속 없는 노력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사실 농촌에서 골채, 곧 삼태기처럼 일을 많이 하는 농기구도 흔치 않다.

대부분 농기구는 한 철만 일하면 나머지 계절은 거의 헛간에서 쉰다. 하지만 삼태기는 계절에 상관없이 사용하다 보니 부지런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국자가 국 맛을 모르듯, 삼태기 자신은 절대로 부자가 될 수 없다.

오늘 이 속담이 가슴을 파고든다. 문화와 문학의 변방인 섬, 제주에서 문학운동을 한답시고 IMF가 한참이던 1999년 계간 문예지 다층을 창간, 올해 겨울호가 발간되면 80, 20년을 채운다.

어쩌면 나는 지난 20년 동안 골채 부지런을 떨어온 것은 아닌가 싶다. 자기 실속은 챙겨보지도 못하면서 20년 동안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주위에서도 나를 보는 눈이 저 사람은 원래 바쁜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살아온 셈이다.

창간 초기 제주도로부터 이삼 년 지원을 받았다. 그리고 나서는 지역사회의 지원이 전무한 상태로 견뎌야 했다.

심지어 상업지라는 이유로 문화예술재단의 지원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성을 띤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발간 형식이 개인이라는 이유였다.

그러면서도 80호를 내는 동안 지역의 문인들 원고를 빠뜨린 적은 단 한 호도 없다. 지역 문학의 발전을 위한다는 취지로 발간되는 문예지가 지역 문인들에게 지면을 열어드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제주의 시인들이 작품집을 발간할 경우 보내오는 시집은 단 한 푼 받지 않고 홍보 차원에서 광고를 게재해 왔다.

또한 제주에서 결성돼 서울 지부까지 만들어 활동하는 동인들의 작품도 빠뜨린 적이 없다. 계간문예 다층은 다층문학동인이 창간의 모태가 됐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원고를 청탁하는 기준은 전국 각 지역에서 열심히, 좋은 시()를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단 권력에서 소외된 시인들에게 먼저 지면을 할애했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은 것인지 이태 전부터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우수문예지로 선정돼 필자들에게 지급할 고료를 지원받고 있고 넉넉하지는 않으나 다소의 고료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제작비와 운영비는 숙제다.

이렇게 혼자 바쁜 척은 다 하면서도 편집주간을 맡은 필자는 창간호에 한 번 신작 3편을 발표한 게 전부다. 말 그대로 골채 부지런이요, 부지런히 국솥을 들락거린 국자 신세였다.

이렇게 말하면 누가 싣지 말라고 했느냐고 힐난할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 시 발표하자고 문예지를 발간하는 일이면 차라리 개인시집을 내는 게 낫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동안 원고료도 제대로 드리지 못했던 시인들께는 빚쟁이의 심정이다.

그러한 까닭에 주간이랍시고 어깨에 힘주기는커녕 시인들만 만나면 죄인의 기분이 든다. 미안하고 미안한 마음을 접을 수가 없다.

계간문예 다층창간 20주년을 맞아 기쁜 마음이어야 할 텐데 지나온 길과 가야 할 길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어쩌면 앞으로가 더 염려되는 마음에 공연히 푸념을 늘어놓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왕지사 내친걸음, 제주 문학의 발전을 위해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쉽사리 접을 수는 없다.

설령 내가 바쳐온 시간과 노력에 마침표를 찍게 되는 날이 올지라도, 이미 우리 제주 문학의 위상이 과거에 비해 제고된 것은 사실이기에 단순히 골채 부지런만은 아니었다고 스스로 위안해 본다. 내일을 향해 더 무거운 걸음을 디디며.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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