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지방권력의 오만
민주 지방권력의 오만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8.09.27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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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운동장’.

공정한 경쟁을 비유할 수 없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한 말이다.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경기에서 이길 수 없다는 데서 유래했다.

이 말은 한 때 우리나라 진보정치의 한계와 선거 패배의 당위성을 합리화 하는 말로 자리를 굳혔다. 특히 진보진영으로 상징되는 야당이 2007년과 2012년 대선에서 연이어 패배한 후 이 말은 정설로 굳어졌다.

한국 사회가 너무 보수적이어서 야당에 의한 정권교체가 어렵다는 상징어가 됐다. 그런데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또 다른 정설이 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통째로 바꿨다.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으로 박근혜 정권이 몰락하면서 빚어진 결과물이다. 그 결과 보수의 몰락이라는 대반전이 벌여졌다.

이는 지난 6월 치러진 지방선거가 증명한다. 이번 결과는 민주당 압승, 자유한국당의 참패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높은 국민적 지지도와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등 새로운 정치지형이 보수진영에게 선거에서 뛸 공간조차 제대로 내주지 않았다.

제주라고 예외가 아니다.

#‘대형 난개발 조사’ 부결처리

시·군 의회가 폐지되면서 유일한 지방의회인 제주도의회 의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들은 문 대통령과 남북화해 분위기라는 천군만마의 지원속에 ‘손쉬운 선거’를 치렀다.

제주도의회 전체 43석(교육의원 5석 포함) 가운데 29석을 차지, 전체의석의 2/3 이상을 확보했다.

특히 이 가운데 민주당 초선의원은 21명으로 절대적 역할이 기대됐다. 아니나 다를까 이들은 도의회 입성 후 ‘변화와 혁신’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도민 눈높이와 시대에 공감할 수 있는 의정활동을 결의했다. 불과 한 달 전 일이다.

민주당 초선의원이 대거 의사당에 진입했다는 사실만으로 도민들은 흡족해 했고, 불합리한 관행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길 기대했다.

그런데 그 기대가 하루아침 깨졌다. 추석연휴 직전 ‘신화역사공원 등 대규모 개발사업장 행정사무조사’안건 부결처리다. 과반인 22명이라는 동료의원이 발해한 안건을 뒤집었다. 민주당 의원들이 대거 포함됐으리라는 사실을 미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추선연휴 내내 제주사회 최고의 관심사가 됐다.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온 민족의 관심속에 치러진 남북정상회담. 민주당의 구심점인 문 대통령의 ‘활약’이 도민들 밥상머리 화제로 올라야 했는데 이들이 문 대통령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도의회 장악 ‘독선’이 빚은 결과

제 11대 도의회를 맞으면서 적지않은 사람들은 과거 보수정당 체제에서의 운영 시스템과는 분명 다른 모습을 내심 믿었다. ‘제주 가치’의 존중으로 상징되는 공정하고 예측 가능한, 그리고 보편적 가치가 제자리를 찾아갈 것으로 내다봤다.

보수정권으로 상징되는 지난 권위주의 정권의 잔재를 걷어내 제주 곳곳에 정의로움이 퍼져나가길 희망했다. 기득권 보다 서민, 대자본으로 상징되는 개발업자 보다 보전으로 상징되는 제주환경가치가 중시될 것으로 여겼다.

민주당 소속인 김태석 도의장은 의회 개원사에서 “촛불혁명이 이뤄낸 정권교체를 토대로, 새로운 시대를 희망하는 도민들의 염원 속에 제11대 의회가 첫 발걸음을 뗀다”며 “이는 혁신적인 지방자치를 구현해달라는 도민주권 행동이 이뤄낸 결과”라고 선언했다.

김 의장의 선언은 개원사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 자신들이 발의하고 나아가 도민들이 지켜보는 중대안건에 대해 찬성과 반대, 기권과 불참이라는 콩가루 조직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내보이면서 예측가능 했던 판을 뒤집었다. 오만한 결과다. 내리연속 지역 3개 지역구의 국회의원 자리를 꽤 차고 있는데다, 사실상 이들의 영향력에 있는 도의원들이 의회를 장악하면서 빚어진 독선과 독주의 결과로 이해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곤 피감기관 공무원들과 함께 줄줄이 해외로 떠났다. 그리고 사과한다. 백번을 양보해도 옳은 모습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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