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만리 해안길 걷다보니 짙은 문주란 향기 ‘가득’
흑룡만리 해안길 걷다보니 짙은 문주란 향기 ‘가득’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9.0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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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제21코스(하도-종달올레)/별방진성~토끼섬 2.2㎞
토끼섬 문주란(전영국 작가 제공).
토끼섬 문주란(전영국 작가 제공).

# 별방조점과 별방시사

새로 복원된 하도포구 앞 별방진성 위에 올라서 300여 년 전에 있었던 별방조점(別防操點)과 별방시사(別防試射)의 광경을 떠올려본다. 1702년 음력 1030일 아침에 조천관을 떠나 낮에 김녕사굴을 보고, 오후에 도착한 순력 일행의 행렬이 성안에 도열해 있는 성정군을 맞는데 그 길이가 사뭇 길어 연대 너머까지 이어졌다. 성안에는 객사(客舍)와 동창(東倉) 그리고 조수(潮水)라 해 지금의 연지라 하는 못이 그려져 있다.

점검을 받은 내용을 보면, 조방장 김여강(金汝江) 이하 성정군이 423명이고 다랑쉬오름과 체오름, 둔지봉 등지의 황자장(黃字場)을 관할하는 목자(牧子)와 보인(保人) 187, 946, 흑우 247, 창고의 곡식은 2860여 석으로 나와 있다.

이튿날 실시한 별방시사는 객사에서 이형상 목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교사장이 시범으로 활 솜씨를 보이고, 밖에서 사원들이 실력을 겨루는 모습이다. 이날 시사에는 각면(各面) 교사장 10명과 사원(射員) 208명이 참가했다. 그러는 한편으로 남문 안쪽에는 말을 점검하기 위해 목책과 울타리를 설치해 놓고 말을 끌어들이고, 동문 밖에서 흑우를 점검하는 그림이다.

별방진성 내 조수(연지).
별방진성 내 조수(연지).

# 거죽뿐인 별방진성

그런데 두 그림에 가득했던 내용에 비해 지금은 너무 허전하다. 성담은 몇 차례에 걸쳐 길게 복원해 놓았지만, 정작 그 돌담이 지키고자 했던 시설은 민가가 대신하고 조수(潮水)’라 했던 성안의 연지(?)와 성 밖 용천수만 두 군데 남아있을 뿐이다.

이러려고 그 많은 예산을 써가며 성을 복원했는가 하는 의아심이 든다. 성담이 안에 있는 시설을 온전히 보호하기 위한 것임을 감안하면, 그냥 내버려 두기에는 너무 아까운 생각이 든다.

이왕 이렇게 성담을 복원한 김에 동쪽에서 제일 큰 성으로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점을 생각해, 건물지를 발굴해 유물들을 끌어 모아 한 쪽에 전시관이라도 마련해서 전시하는 한편 당시 제주 9진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 보여주었으면 하는 욕심이다.

# 돌탑과 돌담

잠시 성안으로 들어갔던 올레길은 동문을 통해 나간 후 얼마 없어 다시 해안도로로 빠진다. 곧 음식점이 나타나고 바닷가 쪽으로 오래 전부터 쌓아놓은 돌탑이 둘러져 있다. 원래 탑파(塔婆)’의 준말로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축조물이라 하는데, 우리나라의 작은 돌탑들은 그런 의미와는 다른 무엇이 있는 듯하다.

이를 테면 공든 탑이 무너지랴할 때, 그 공을 들이며 쌓는 탑은 꼭 불교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렇다고 돌이 많은 제주에서만 탑을 쌓는 건 아니다. 무슨 소원이 그리 많은 지 전국의 산야를 돌다보면, 크고 작은 돌탑이 곳곳에 서있다.

그곳을 지나면 옛 밭담이 크게 허물어지지 않고 겹겹이 쌓인 채로 다소 곳이 펼쳐 있다. 누가 흑룡만리라 표현했는지 모르지만, 제주만이 갖는 독특한 풍경으로 커다란 예술작품이라고 봐도 손색이 없겠다.

거칠어서 맞물리기 좋은 현무암, 하나의 돌 위로 또 하나의 돌이 얹힌다. 돌이 돌을 누르듯 생각이 생각을 누르며 침묵, 그리고 햇볕이 오랫동안 들지 않은 돌 틈에서 유폐된 생각이 이끼로 돋아나와 말을 할 때, 침묵은 돌의 심장이거나 허파가 되어간다. 바람이 돌담을 흔들수록 돌은 돌과 가슴으로 맞닿으며 서로 뿌리 화석이 되어간다.’ -강연옥 시 돌담부분.

하도리 각시당.
하도리 각시당.

# 각시당 유감

해녀 탈의장인 듯 보이는 건물과 불턱안내판이 서 있는 곳을 지나면, 언뜻 연대(燃臺) 같은 낮은 돌담의 구조물이 보이는데, 앞에 각시당이라는 안내판을 세웠다.

본 당은 영등할망(바람의 여신)에게 해녀와 어부, 그리고 타지에 나가 있는 신앙민들의 무사안녕과 풍요한 해산물의 채취를 기원하는 의례를 치르는 곳으로, 고복자 심방이 모든 의례를 집전한다.’

이 내용만 보면 도내 어느 해신당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영등맞이 굿을 음력 213일에 치르는 것과 영등할망, 선왕, 신앙민의 몫으로 메() 세 그릇과 돌레떡, 생선, 과일, 삶은 계란, 술 외에 야채, , 지전 등을 올리는 것에서 조금의 차이를 보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 앞이 열려 있어 여느 해신당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았는데, 이번 취재 시에는 주위 담장도 키보다 훨씬 높여 쌓았고, 모 경비회사의 경비구역 표지가 붙어 있어 도무지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다. 당신(堂神)이 강림하려면 주위가 아늑해야 함을 모르는 바 아니나, 겉만 보고 지나야 하는 올레꾼들의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 토끼섬을 바라보며

이제 제주에서 해안도로 변에 건물이 들어서는 것은 익숙하게 보이는 풍경이다. 이 불더위도 개의치 않고 힘차게 올라가는 서너 채의 건물 공사현장에서 사진 찍듯 모인 해녀상을 지나면, 작은 포구 뒤로 토끼섬이 보인다.

토끼섬은 해안에서 조금 떨어진, 천연기념물 제19호 문주란의 자생지로 잘 알려진 섬이다. 문주란은 수선화과에 속하는 상록의 다년생 초본식물로 79월에 꽃이 피는데, 산형화서로 꽃술이 많이 달리며, 흰색으로 향기가 짙다.

온난한 해안의 모래땅에서 잘 자라며, 우리나라에서는 이 토끼섬에만 자생하는 걸로 알려졌다. 지금은 원예용으로 심어져 주변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 썰물 때 가슴 정도 차오르는 바닷물을 건너가면 볼 수 있다 하여, 자세히 바라보니 네 명의 남자들이 섬에서 걸어 나오고 있다. 밀물이 한창 진행 중이어서 여건상 가보지 못하고, 지인의 사진을 빌려 싣는다. <계속>

<김창집 본사 大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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