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존재는 아름답다’…울림의 작품집
‘살아 있는 존재는 아름답다’…울림의 작품집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8.16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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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도 무게가 있습니다(1990)
‘새도 무게가 있습니다’(문학동네, 2002) 표지.
‘새도 무게가 있습니다’(문학동네, 2002) 표지.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 책방에는 묘한 징크스 같은 게 있다. 평소에는 눈에 잘 띄는 책이지만 일단 그 책을 찾는 분이 오면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다. 함께 이리저리 찾다가 포기하고 그 손님이 책방 문을 나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눈 앞에 다시 나타난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몇 달 전에도 한 판화가의 판화집을 찾는 분이 있었다. 그 판화가의 작품집이 한 권 정도는 있었지 생각하며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안 보였다.

판화 엽서도 몇 장 있었는데하면서 두리번 거리다가 마음을 비우고 나니 슬그머니 쌓아 놓은 책더미 속에서 나타났다.

그럴 때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아직은 네가 내 품을 떠나기 싫은 게로구나

그러다가 얼마 전에 한 소장가에게서 여러 차례의 교섭과정을 거쳐 그 판화가의 목판화 작품 한 점을 입수하게 되었다. 그 목판화가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의 판화집을 뒤적여 보니 바로 그 책에 수록된 작품이었다. 이렇게 우리 책방에서 그 작가의 책과 작품이 만나려고 몇 달 전에 그렇게 숨바꼭질을 했었구나 싶었다.

이게 바로 ()’이구나

그 작가가 바로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판화가 가운데 한 사람인 이철수(1954~)이다. 한 때는 문학소년이었다가 군 제대 후에 홀로 그림을 공부했고, 1980년대엔 탁월한 민중판화가로 평가 받았던 그였다. 1980년대 끝무렵부터 변화하는 현실을 고민하고 스스로를 살펴 맑게 하겠다는 안간힘으로 만들어낸 결실들이 수록된 책이 바로 1990년 해인사 출판부에서 처음 펴낸 판화집 새도 무게가 있습니다이다. 초판이 절판된 후 10여 년이 지난 2002년 문학동네에서 개정판이 출판되었고, 우리 책방에 소장된 책도 바로 이 개정판이다.

이 책은 그가 민중판화가에서 불교적인 세계로 조금은 무모하고 많이 치졸하게 발길을 옮겨가는과정에서 탄생했고 한 십 년여 판화가로 살면서 부딪친 첫 갈등이 만들어낸 작품집이다.

책을 펼치면 한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목판화 작품을 수록하고, 왼쪽에는 그 주제에 대한 그의 단상(斷想)을 적고 있다. 그 단상들 가운데 어떤 글은 독자들의 마음 속으로 그냥 훅 들어온다. 하지만 대부분의 글들은 우리들로 하여금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판화가 이철수의 작품 ‘넋’(1990, 필자 소장).
판화가 이철수의 작품 ‘넋’(1990, 필자 소장).

입수된 그의 목판화는 제목이 이다. 허공을 떠돌아 다니는 사람과 개의 넋을 표현한 작품으로, ‘한 해 백만하고도 오십만을 더한 개가 이승을 떠난다니로 시작되는 그의 글 속에서 작가가 말하려 하는 게 무엇인지 다들 짐작하실 수 있으리라. ‘그놈이나 이놈이나 크게 다르지 않, ‘살아 있는 모든 것은 하는 짓마다 아름다우새도 무게가 있다는 작가의 말에 큰 울림이 있다.

유난히 무더운 올 여름 삼복 더위에 또 얼마나 많은 견공(犬公)들이 이승을 떠났을까. 말복(末伏)이 막 지났으니 이젠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으려나. 개고기 식용에 관한 여러 의견이 분분한 요즈음 이 창작된 1990년 여름보다는 허공을 떠도는 견공들의 숫자가 훨씬 줄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긴 줄어든 만큼 대신 허공을 떠도는 계공(鷄公)이나 압공(鴨公)들의 숫자가 늘어나면 그놈이 그놈이려나.

‘새도 무게가 있습니다’와 ‘몽실언니’(권정생, 창작과 비평사, 2002) 표지(판화가 이철수의 작품).
‘새도 무게가 있습니다’와 ‘몽실언니’(권정생, 창작과 비평사, 2002) 표지(판화가 이철수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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