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여성 독립운동가 '강평국'을 아시나요
비운의 여성 독립운동가 '강평국'을 아시나요
  • 현대성 기자
  • 승인 2018.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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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서 도쿄조선여자청년동맹 집행위원장 등 독립운동 진행
여성 계몽 운동에도 앞장선 신여성, 독립운동 공적 인정 못 받아
제주시 황사평 천주교 묘역에 있는 강평국 선생 추도비
제주시 황사평 천주교 묘역에 있는 강평국 선생 추도비

일제에 맞서 항일운동을 펼쳤지만, 지금까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비운의 여성 독립투사가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1919년 3·1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일본 도쿄에서 독립 운동을 이어간 강평국(1900~1933) 선생이다.

제주항일기념관이 2014년 발간한 ‘제주항일항쟁사’에 따르면 강평국 선생은 1926년 동경여자의학전문학교에서 유학하던 중 1927년 1월 16일에 창립된 도쿄조선여자청년동맹의 초대 집행위원장을 역임했으며, 같은 해 신간회(新幹會) 동경지회가 창립되자 부인부 책임자로 선임돼 활약했다고 기록돼 있다. 

강평국 선생은 또 1928년에는 여성을 중심으로 하는 민족유일당 여성단체인 근우회 일본지부를 창설, 목포 출신 소설가 박화성 선생과 함께 도쿄지회 의장단으로 활약했고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했다고 남겨져 있다.

이 뿐만 아니라 강평국 선생은 신성여학교 1회 졸업 동기생인 최정숙, 고수선 선생과 함께 1919년 3·1 만세운동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평국 선생은 독립운동 뿐 아니라 1920년 최정숙 선생과 함께 ‘여수원’을 개설해 여성 문맹 퇴치와 교육 보급에 힘쓰는가 하면 1925년에는 최정숙, 고수선 선생 등과 ‘제주여자청년회’를 조직해 여성 의식 향상과 권익 보호를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강평국 선생은 1933년 늑막염이 악화해 유학 도중 제주로 귀향했지만, 당시 신여성 운동가를 검거하는 데 혈안이 돼 있던 일제에 의해 광주로 구인됐다 지병 악화로 숨졌다.

강평국 선생과 친밀했던 제주 여성 독립운동가 고수선 선생의 아들 김률근씨는 “어머니는 생전에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지만, 친구인 강평국 선생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것을 늘 아쉬워했다”며 “어머니가 생전에 강평국 선생을 국가유공자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잘 이뤄지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고수선 선생 등 강평국 선생의 동지와 그 제자 13명은 1981년, 강평국 선생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시신이 안장된 황사평 천주교 묘역에 ‘독립투사 강평국 선생 추도비’를 건립하기도 했다.

책 ‘불꽃의 여인, 강평국’을 쓴 허영선 제주4·3연구소장은 “강평국 선생의 독립운동 공적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실체가 있지만 유족이 없어 독립유공자 선정 추진이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강평국 선생의 공적이 인정받지 못한 것은 우리 후손들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성 기자  canno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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