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과 봉봉 한 상자
고전 번역과 봉봉 한 상자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7.24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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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순 제주문화예술재단

몇 달 전 지역에서 한학을 공부하시는 어르신을 만났다.

선생은 역사를 전공하지 않았으나 어릴 적 할아버지께 배운 한문 실력을 키워 제주 지역사 문헌을 발굴하고 번역하여 한문 깜깜이들에게 문헌 사료를 한글로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해주고 계시다.

평소 신세 진 게 많은 데다 듣고 싶은 이야기도 있어 점심을 대접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통원치료 중인데도 기꺼이 응해주셨다.

선생은 그간의 안부를 물은 뒤 지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다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늘 듣게 되는 말씀인지라 송구한 마음뿐이었다.

지역사를 공부하려면 답사도 다녀야 한다면서 제주사와 관련된 타 지방 인물들의 종가를 방문하면 좋겠다고 하셨다. 기회가 되면 선생님께 여쭙고 다녀오겠다고 말씀드렸다.

선생이 마침 옛 편지를 번역하는 작업을 마친 터라 번역된 서간에 대해 여쭸다.

이번에는 또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병 중에도 3개월 간 밤새 작업해서 겨우 마쳤노라 하셨다.

건강상 이유, 물리적인 작업시간 등으로 해제는 쓰지 못 해 아쉽다는 말씀도 하셨다.

선생은 서간집이 나오던 날, 손수 그 책을 건네주셨다. 미처 다 읽지 못한 채 다시 뵌 날이 바로 식사 자리였다.

질문지를 작성하고 만나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서간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더 물을 수 없었다.

옛 편지는 번역하는 게 매우 어렵다.

글자를 판독하는 일부터 주고받는 이의 내밀한 인간관계는 물론 시대 상황까지 두루 꿰고 있어야 한다.

그 어려운 일을 그 짧은 시간에 해낸 열정과 책임의식은 필자 같은 게으름뱅이는 따라갈 수가 없다.

요즘 말로 언빌리버블이다.

번역료는 받으셨냐고 여쭈니, 지금은 의뢰 기관에 규정이 만들어져 받았다고 하셨다. 과거 대가 없이 수십 권의 옛 문헌을 번역해주신 선생인지라 다행이다 싶었다.

선생은 번역을 하시는 다른 분의 일화를 들려주셨다.

한 문중에서 고문서를 갖고 와 번역을 맡겼는데, 이때 이 분이 받은 사례는 음료수 봉봉 한 상자였다고 한다.

옛 문헌의 내용과 번역의 어려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시절의 일이라고 하셨다.

그동안 선생의 노고를 생각하니, 다행이다 싶다가도 마음 한편 아려오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올챙이 같기도 하고 버들처럼 늘어진 글자를 한 자 한 자 읽는 데 드는 시간이랑 번역하는 데 드는 공을 아는 사람이라면 음료수로 퉁칠 일이 아님을 알 터인데, 이 분은 음료수를 건넨 후 그대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런 분이 한 두 분일까.

요즘 젊은이들은 한자 읽기를 힘들어 한다.

한글 전용 시대가 가속화한 때문이지만, 1990년대 이전 출간된 책자에는 한자가 섞인 게 적지 않다.

세상이 변하여 외국어나 조어(造語)는 읽지만, 한자엔 손사래를 치는 세상이니 그러려니 생각하다가도 일상에 사용되는 말 가운데 한자가 얼마나 많은지를 안다면 이리 한문 번역의 고충을 가벼이 여겨도 되는 걸까?

그러니 고전 번역에 대한 우리 지역사회의 관심은 말할 나위가 없다.

올해부터 일을 핑계로 미뤘던 한문번역반에 참여해 공부하고 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제주 사료를 스스로 읽고 싶은 마음에 도전했다.

보이는 것은 흰 종이요, 까만 글씨다. 그래도 배우는 즐거움이 적지 않다. 고문헌 번역의 고충을 알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나, 고문헌을 익히고 제주 역사를 공부하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훗날 필자에게 누군가 고문서를 들고 와 번역을 의뢰하고는 봉봉 한 상자를 건넬 날이 올까만, 그래도 옛 문헌을 번역하는 사람에 대한 예우는 꼭 하게 되는 사회였으면 한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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