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힘, 사람의 품격
언어의 힘, 사람의 품격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7.22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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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수 시인/문화기획가

며칠 전 제주 사투리로 노래하는 아이의 동영상을 보고 박장대소를 했었다. 귀여운 어린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흥겨운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제주 사투리의 어감 때문이었다. 내 귀에는 프랑스어 어감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고향을 떠나온 지 꽤 되었지만 아직도 친구들을 만나면 제주도 사투리로 왁자지껄 떠드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새삼스럽게 낯선 언어로 들렸다. 그 비밀은 노랫말 가사에 있었다. 제주도 사투리를 보존하기 위한 운동을 하는 분들이 제주도 사투리를 찾아내어 노래가사로 만들었기 때문에 내가 모르는 어휘들도 상당수 들어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 분들의 노력이 고맙기도 했지만, 내가 혹시 고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도 느꼈다.

그때, 어느 한문학 강연에서 들었던 도덕경(道德經)’의 글귀 하나가 떠올랐다.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이라는 글귀였다. 아주 난해한 문구라서 학자들마다 다양한 해석을 하고 있는 문장이다. 이때 강의를 하신 분은 이 문장을 언어의 구조를 응용하여 해석을 했다. 언어는 형식(시니피앙)과 내용(시니피에)의 구조로 이뤄진다. 가령, ‘한라산이라는 형식은 그 속에 제주도에 있는 높은 산이라는 내용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내용과 형식의 조합은 꼭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똑같은 내용이더라도 할망산, 설문대산, 가시봉등등 어떤 이름(형식)으로 불러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강사는 이 문장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들을 모두 언어로 담아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했다. 언어만으로 우리의 모든 것을 표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가령,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고 해서 내 사랑이 상대방에게 완벽하게 전달되는 것도 아니고, 그때 내가 느낀 복잡미묘한 마음을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로 다 담아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언어는 이렇게 불완전한 그릇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언어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특정한 언어를 가지고 소통을 하는 사람들은 그 언어를 통해 그들만의 공동체 의식을 구축하게 된다. 특정 세계관이나 가치관 등이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 속에 녹아 있게 마련이고 자연 환경이나 삶의 질적 조건들마저도 언어 속에 흐르고 있게 마련이다. 외국에 여행을 갔다가 한국어가 들리면 반가운 마음이 드는 것처럼, 우리 지역 사투리를 사용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말이라도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들이 너무 거칠어지고 있는 것 같다. 국어 순화 운동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들이 우리의 존재가치를 결정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제주도 사투리를 보존하려는 운동을 하는 것처럼, 우리의 존재가치를 고양시키기 위해서 언어 순화 운동을 해야 한다.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우리 생각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매체들이 늘어나다 보니 개인이 스스로 자정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학교 폭력이 사회문제가 되자 정부는 강력한 법을 만들어 육체적 폭력의 문제를 통제하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육체적 폭력의 문제는 줄어드는 것 같지만, 오히려 언어 폭력의 피해는 늘어나고 있다. 언어폭력이 어떤 육체적 폭력보다도 무서운 것은 흔적이 남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문제가 되면 늘 한결같은 대답이 장난이었다면서 발뺌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양상은 학교사회뿐만 아니라 일반사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SNS의 악플 때문에 자살을 하는 것만 보더라도 언어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다.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품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그 정신을 담아내는 언어가 아름다워야 한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언어가 아름다워야 우리 사회가 더불어 아름다워질 수 있다. 행복한 사회와 행복한 나라는 이렇게 언어를 가꾸는 소박한 노력들이 모여 이뤄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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