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않을 제주
돌아오지 않을 제주
  • 뉴제주일보
  • 승인 2015.11.18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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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호 영화감독

 고향이기도 하고 노모가 계신지라 제주를 자주 왔다 갔다 한다. 여전히 철이 없는데 어느 덧 우리 나이로 50이 되니 세상이 조금씩 달라 보인다. 무언가 안타까움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미래도 보지만 잃어버린 것에 대한 소중함도 알게 되는, 자식도 걱정되지만 노모도 염려되는 것처럼 어느덧 두 가지를 동시에 느끼게 되는 쓸쓸함이 있다.

육지에 사는 제주인들이 몇 년 전부터 공통적으로 한탄해 마지않는 일이 있다. 그건 제주 곳곳에 나 있는 도로이다. ‘왜 만들었을까?’라고 효용성에 의문이 들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고향의 자연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해안도로 얘기로 바뀌면 곧바로 분노가 터져 나온다. 당시 해안도로를 낼 땅의 보상비가 부족해서라지만 바다 바로 가까이 그것도 제주 특유의 자연석과 바다를 덮어버린 그 무심함에 치를 떤다.

역설적이게도 그 도로 덕분에 육지 사람들은 제주를 더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됐는지 모른다. 빤한 관광지 몇 곳만으로 제주를 알았던 사람들이 그 도로들을 통해 쉽게 자연의 속맛을 엿보고 그 도로 너머 아직 보여지지 않은 숨은 맛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제주는 여러모로 주목받는 곳이다. 국내에선 귀농·귀촌 바람이 불면서 사람 살 곳으로서의 입지가 올라갔다. 교육에 민감하고 상대적으로 경제여건이 좋은 부유층에겐 국제학교가 주 관심사다.

자식한테 유독 걱정이 많은 한국의 부모로서는 안전하게 아이들을 키우고 언제든지 방문(감시?)할 수 있으며 외국 명문대 진학에 유리한 국제학교가 큰 메리트로 작용하고 있다. 제주에 국제학교 몇 곳이 더 개교할 예정이라 하니 귀추가 주목된다.

국외로는 자금력이 든든해진 중국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닭의 모양과 비슷하다는 중국지도를 보면 한반도는 닭의 긴 부리를 연상시키는데 제주는 닭 가슴의 중간쯤으로 남방의 하이난(海南) 섬이 닭이 낳은 계란이라면 대만은 닭이 뒷발로 버티어 선 모양새고 제주도는 닭이 앞발을 뻗은 형세다. 그 형세대로라면 닭이 달려가고 싶은 곳은 태평양과 동남아이다. 그 만큼 제주는 중국에 중요하기도 하고 가까울 뿐만 아니라 쉬었다 가기에도 좋은 곳이다.

이러한 이유로 제주의 상주인구가 100만명을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그럴 경우, 제주의 치솟는 땅값이나 집값은 일시적 거품현상이 아니라 고착화될 것이다. 공항도 더 생기고 크루즈 입항도 잦아지고 도정의 의도대로 IT 위주의 스마트 제주, 글로벌 제주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관광지로 유명한 사이판에 촬영 때문에 갔다가 본의 아니게 6, 7일을 머문 적이 있다. 그러다보니 교포가 개발하는 트레킹과 4륜 바이크 코스의 컨설팅을 부탁받은 적이 있었다. 덕분에 가장 높은 산의 정상에 서서 사이판 섬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사방을 둘러보니 이미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다녔던 관계로 내려다보이는 대부분 지형이나 위치, 건물 등이 한 번쯤 가 본 곳들이었다. 그 만큼 작은 섬이었고 그걸 알게 되는 순간 이상하게도 사이판의 매력이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사이판이 더 이상 신비함이나 다른 무엇을 기대할 수 없는 매너리즘에 빠진 배우처럼 느껴졌다.

최근 노모를 모시고 오랜만에 하귀에서 애월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드라이브 했다. 나름 효도라고 갔는데 운전하는 내내 참담함이 밀려왔다. 예상했던 바지만 죽 늘어선 펜션과 호텔 그리고 카페들을 보며 ‘여기가 내 고향, 제주인가?’ 싶었다.

도로 가까이, 바다 가까이 개념도 없이 지어진 건물들이 내 고향의 자연을 대신하고 있었다. 필자는 필요한 개발은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편이다. 그러나 제주는 사이판처럼 섬이다. 이것저것 개발하기에는 너무나 작고 소중하다. 그리고 매력을 잃으면 안 된다. 그 매력이야말로 자연과 함께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유산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제주는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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