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서 첫 발간된 '불어판 춘향전'
프랑스서 첫 발간된 '불어판 춘향전'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6.21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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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봄(Printemps Parfumé.1892)

[제주일보]몇 해 전에 고서 매입 여부에 관한 문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 분이 배낭여행을 갔다가 독일에 있는 어느 헌책방에서 발견하고 호기심에 매입한 책이라고 사연을 소개했다.

고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장하고 싶어할 만한 책이었다. 사진을 살펴보니 원본으로 보이기는 하는 데 몇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제일 큰 문제는 겉표지가 새로 장정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었다.

조그만 사진만으로 판단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었지만 겉과 속의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그 점이 매입 가능 가격에 영향을 주었고, 소장자의 희망 가격에 부응할 수 없었기에 결국 아쉽지만 거래가 성사되지 못했다.

예전부터 소장하고 싶었던 고서였기에 아쉬움만 남았던 그 책이 얼마 전에 입수되었다. 우리네 문학 작품의 해외 번역 출판사를 얘기할 때면 빠지지 않는 책. 바로 1892년 프랑스에서 발간된 최초의 불어판 춘향전인 '향기로운 봄(Printemps Parfumé)'이다.

지금으로부터 126년 전 유럽에 처음으로 소개된 우리의 문학 작품이라는 것 외에도 또 한 가지 주목되는 건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인 홍종우(洪鍾宇 1850?~1913)이다. 당시 불어에 능숙하지 못했던 그가 작가 로니(J.-H.Rosny)와 협력해서 번역한 책이기 때문이다.

우리 근대사에서 ‘홍종우’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3일천하 갑신정변으로 유명한 풍운아 김옥균(金玉均 1851~94)을 중국 상하이에서 암살한 자객(刺客). 그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 신분으로 우리의 고전을 유럽에 소개했던 그가 몇 년 후에는 망명한 정객을 암살하고, 그 후에는 대한제국 관료로 승승장구하다가 제주목사(濟州牧使 1903년 1월~05년 4월)를 거쳐 슬그머니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예전에는 단순하게 자신의 부귀 영달을 위해 자객이 된 인물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주로 받았지만, 프랑스에서 유학할 때의 언행이나 제주목사로 부임해서 일본인에게 집을 빌려주거나 상품을 팔고 사는 행위 등을 금지하고, 심지어 일본인이 설립한 학교에 입학하는 자는 참수(斬首)에 처한다는 포고령을 내려서 목포 주재 일본영사가 제주에 출장을 오는 일까지 있었던 점을 보면 그렇게 단순하게 볼 수 만은 없는 다양한 면을 가진 인물임에 틀림없다.

파란만장했던 그에 대해 관심 있는 분들은 일본에서 출판된 아오야기 미도리(青柳 緑)의 그의 일생을 다룬 역사소설 '이왕의 자객(李王の刺客)'(潮出版社,1971)이나 조재곤의 '그래서 나는 김옥균을 쏘았다'(푸른역사,2005) 등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그가 제주목사로 재직했던 1904년 5월 방선문(訪仙門) 계곡에 남긴 마애명(磨崖銘)은 지금도 제일 높은 곳에 제일 큰 글씨로 여전히 건재하다. 지금은 낙석 위험으로 출입이 금지되어있지만, 조만간 재개방이 되면 방선문을 찾아 그의 이름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그의 마애명을 볼 때마다 드는 궁금증이 있다. 그는 개인의 부귀영화를 쫓는 그냥 ‘자객’이었을까? 아니면 시대를 사는 방식이 다른 또 다른 형태의 ‘애국자’였을까?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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