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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밟고 선 땅 아래가 망자 무덤'…삶의 터전을 잃다
'밟고 선 땅 아래가 망자 무덤'…삶의 터전을 잃다
  • 현봉철 기자
  • 승인 2018.06.17 1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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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마을의 눈물 금악마을

[제주일보=현봉철 기자] 4월의 섬 바람은 수의 없이 죽은 사내들과 관에 묻히지 못한 아내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은 아이의 울음 같은 것

밟고 선 땅 아래가 죽은 자의 무덤인 줄 봄 맞이하러 온 당신은 몰랐겠으나 돌담 아래 제 몸의 피 다 쏟은 채 모가지 뚝뚝 부러진 동백꽃 주검을 당신은 보지 못했겠으나

-이종형의 시 ‘바람의 집’ 中

제주4·3은 당시 제주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3만명 내외가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 마을은 파괴되고 마을공동체는 해체됐는데 당시의 참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잃어버린 마을’이다.

잃어버린 마을은 4·3 당시 마을 전체가 불에 태워진 후 복구되지 않고 폐허로 남은 곳 등을 말한다. 제주4·3사건위원회 조사에서 ‘잃어버린 마을’은 84개소로 확인됐다. 제주4·3연구소는 제주시 82개소, 서귀포시 26개소 등 108개 마을이 없어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1948년 10월 제주도경비사령부는 포고문을 통해 ‘전도 해안선부터 5㎞ 이외의 지점 및 산악지대의 무허가 통행금지를 포고하고 위반하는 자에 대해서는 이유를 막론하고 폭도배로 인정하여 총살에 처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같은 해 11월 계엄령을 선포해 중산간 마을을 모두 불태웠다. 1954년 4월부터 해안마을로 소개됐던 중산간 주민들에게 마을 복귀가 허용됐지만 가족이 몰살당하거나 이웃이 집단희생된 주민들은 마을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했다.

‘밟고 선 땅 아래가 죽은 자의 무덤’이었기에 잃어버린 마을로 남게 됐다.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는 금오름을 중심으로 새미소오름, 누운오름, 정물오름, 정물알오름, 도너리오름, 문도지오름, 선소오름이 마을을 감싸고 있고 작은 샘과 하천이 많아 예부터 밭농사와 목축이 성행했던 부촌이었다.

그러다가 1948년 4·3이 발생하자 주민들은 개역빌레궤, 밥쉐물, 금오름, 알곳 등으로 피신했다. 중산간 마을의 특성상 무장대와 토벌대의 중간에 낀 형국이었다.

무장대는 마을을 기습해 주민들을 납치하거나 학살했고, 우익인사의 집을 불태웠다. 이에 대응해 경찰도 마을을 기습해 집을 불태우고 주민들을 학살했다. 희생자 중에는 노인뿐만 아니라 장애인, 임신부 등도 있었다.

중산간 소개령이 내려져 해안마을로 내려갔던 대부분의 주민들은 1949년 봄부터 명월리 상동인 고림동에 임시로 살다가 1953년 7월이 지나서야 당국의 허가로 마을을 재건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웃동네, 중가름, 오소록이동네, 별드르, 별진밭, 새가름, 동가름 등의 마을은 끝내 복구되지 못한 채 잃어버린 마을로 남게 되었다.

금악리는 4·3 당시 300여호의 가옥이 없어지고 152명의 주민이 학살되거나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지난해 6월 개통된 ‘금악마을 4·3길’은 4·3 당시 소개령으로 마을 전체가 사라졌다고 재건된 마을인 금악리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웃동네 가는길(6.5㎞)과 동가름 가는길(6.5㎞) 등 2개 코스로 조성돼 있는데, 이곳에서 만나게 되는 ‘잃어버린 마을’만 6곳이다.

웃동네 가는길 코스의 중심에 위치한 금오름은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진지동굴들이 만들어져 4·3 당시에는 주민들의 피난처로 사용됐다. 4·3때 주민들은 이곳에서 망을 보다가 경찰이 마을로 다가오면 붉은 깃발을, 떠나가면 하얀 깃발을 흔들어 마을에 알리기도 했다.

마을사람들의 피난처로 사용됐던 진지동굴은 마을 재건 이후 2곳만 남기고 모두 메워졌다.

금오름은 정상까지 차량 진입이 가능해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고, 패러글라이딩 이륙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제주에 정착한 가수 이효리가 JTBC 예능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에서 가수 아이유와 함께 찾았던 곳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동가름 가는길에 위치한 만벵듸묘역은 1950년 한국전쟁 예비검속 당시 대정 섯알오름에서 4·3가족라는 이유만으로 학살된 수십명의 희생자들을 1956년에 수습해 조성한 묘역으로 4·3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 이 길을 걷다보면 잃어버린 마을들을 연이어 만나게 된다. 삶의 터전을 버리고 피난을 가야만 했던 이들, 그리고 끝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 마을로 돌아오지 못한 그들의 고달픈 삶을 느낄 수 있다.

찾아가는 길=제주시 도심에서 서쪽으로 평화로(1135번)를 따라가다가 광평교차로에서 오른쪽 도로를 따라 이시돌목장으로 들어선 후 직진하다가 금악삼거리를 지나면 금악초등학교 인근에 금악리 건강증진센터와 4·3길 센터가 나온다. 제주시 한림읍 한창로 1295-1

현봉철 기자  hbc@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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