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의 정신건강의학적 치료”
“통증의 정신건강의학적 치료”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6.17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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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제주일보] 예전에 친척 어르신께서 간단한 수술을 받으셨는데, 몇 개월이 지난 이후에도 수술 부위가 너무 아프다며 괴로워하셨다.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수술이 잘 되었고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도 통증이 너무 심해서 견딜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당시에 그분께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권했는데, “상담을 받는다고 아픈 게 좋아지겠냐?”며 버럭 화를 내시던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

사실 정신건강의학과는 상담을 통한 정신치료뿐만 아니라, 뇌에 작용하는 약물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의학 분야이다. 통증은 아픈 부위에서 느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아픔을 만들어내고 느끼는 부위는 뇌이기 때문에, 통증에 대한 약물은 뇌에 작용한다.

따라서 뇌에 작용하는 약물을 전문으로 하는 정신건강의학과는 다른 과에서 충분한 치료를 해도 조절하기 어려운 통증을 다룬다. 신경성이라는 병명이 붙은 신체 질환이나, 통증의 가면을 쓴 우울증 뿐 아니라, 정신건강의학이 통증 그 자체에 대해서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가 수영을 하다가 어딘가에 긁혀서 발에 피가 나는데도 모르고 있다가, 물 밖으로 나온 후 피가 흐르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아프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다. 또 긴장하고 있을 때는 아픈 줄도 모르다가 긴장이 풀리면서 아픈 경우도 흔하다.

이렇게 우리 뇌에서는 때로는 통증을 느끼게 하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고통을 못 느끼도록 억누를 수 있는 기능도 있다. 뇌가 통증을 허용하기도 하고 억제하기도 하면서 사람의 행동을 조절하는 것이다.

원래 통증은 뇌가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내는 기능이라고 설명한다.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이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빨리 피하기 위한 통증이고 나머지는 몸을 못 움직이게 하는 통증이다.

만약 야생 동물에게 물렸거나 어딘가에 찔렸는데 별로 아프지 않다면, 그런 상황을 별로 피하려고 하지 않다가 더 심하게 다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빨리 그 상황을 피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통증이다.

반면에 너무 무리를 해서 다리를 다쳤다면, 다리를 움직이지 않고 쉬어야 빨리 호전될 것이다. 그래서 뇌가 다리를 아프게 만들어서 움직이지 않고 빨리 회복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처럼 뇌는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해 통증을 다양하게 이용한다. 완전히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이런 기능에 혼란이 오면 분명히 치료가 다 되었는데도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통증이 지속된다. 통증을 조절하는 우리 뇌의 부분이 혼동을 일으켜 다 나았는데도 더 쉬라는 신호를 계속 보내는 상태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점은 그 통증 신호를 담당하는 뇌 속의 신경전달물질이 우울증에도 관련되는 노르에피네프린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노르에피네프린과 연관된 몇몇 우울증 치료 약물은 통증 치료에 매우 효과가 크다.

사고나 수술 후 감소되지 않는 원인 불명의 통증, 생리 전 증후군과 같은 여러 통증 관련 질환에서 현저하게 호전되는 사례들이 많다. 또한 살짝 스치기만 해도 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는 희귀병인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이라는 병에도 정신건강의학과의 치료가 효과적임이 확인되었다.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편견을 깬다면 치료하기 어려웠던 고질적인 통증에 대해서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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