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일보=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이성계(李成桂)가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왕이된 지 오래되지 않은 때 일이다.

조선 8도(道)의 개국공신들이 다 모이자, 태조 이성계가 1등 공신인 정도전(鄭道傳)에게 8도 사람들을 평(評)해보라고 했다.

정도전이 사자성어로 8도를 평하기 시작했다. 경기도 사람들은 ‘거울에 비친 미인과 같다’해 경중미인(鏡中美人)이라 했고, 충청도 사람들은 ‘맑은 바람, 밝은 달과 같은 품성’이라는 뜻의 청풍명월(淸風明月)이라고 표현했다.

전라도 사람들은 ‘바람에 하늘거리는 버들처럼 감정과 인정미가 있다’해 풍전세류(風前細柳)라고 했고, 경상도 사람들은 ‘소나무와 대나무 같은 절개를 지녔다’는 의미로 송죽대절(松竹大節)이라고 했다.

그리고 강원도는 ‘바위 아래 있는 늙은 부처’라는 암하노불(岩下老佛), 황해도는 ‘봄 물결에 던지는 돌’이라고 춘파투석(春波投石), 평안도는 ‘산속의 사나운 호랑이’라는 산림맹호(山林猛虎)라고 했다.

▲정도전이 여기까지 말하고 이성계의 고향 함경도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이성계가 어서 말하라고 재촉하자 ‘함경도는 ‘진흙 밭에서 싸우는 개’라는 뜻으로 ‘이전투구(泥田鬪狗)’라고했다.

“아니 개 라니….” 왕의 얼굴이 벌게지자 정도전은 얼른 “그러나 ‘돌 밭을 가는 황소’라는 뜻의 석전경우(石田耕牛)라고 해도 됩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왕의 얼굴이 풀어지고 많은 상을 내렸다는 얘기가 야사(野史)에 전해온다.

‘진흙 밭에서 싸우는 개’보다 ‘돌 밭을 가는 황소’가 듣기 좋다는 것은 불문가지 아니겠는가. 그런데 요즘 정치는 이전투구도 좋은 모양이다. 정말 개판이라고 해도 정치인들은 얼굴도 붉히지 않는다.

개판이 맞다는 건지 할 말 없다는 건지…. 그들의 속내를 알 수가 없으니.

▲그건 그렇고. 제주사람들은 어떤가?

정도전의 8도 평에는 제주사람 평이 없다. 그때는 제주도가 전라도에 속해 있었다.

과거는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제주사람들은 다른 지방과 분명 다른 점이 있다.

지난 6·13 지방선거 때 목격했던 일 하나. 시내 공원에는 여러 색깔 옷을 입은 선거운동원들이 여기저기 무리지어 있었다. 이 사람 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 같았는데 한 쪽에서 언성이 높아지더니 싸움이 벌어졌다.

“당신 XX도서 왔지?”, “아닌데요”, “그럼 당신 부모가 XX도인가?”

한쪽은 네가 그 정당을 열렬히 지지하는 걸로 보아 분명 XX도라는 것이고, 다른 한쪽은 네가 그러니깐 꼴통소리를 듣지하고 비아냥댔다.

이를 바라보던 다른 사람이 끼어들었다. “A당이나 B당이나 우리와는 관련이 없으니깐…”

빨강이면 어떻고 파랑이면 어떠냐는 말로 화해를 붙였다.

▲선거가 끝나자 광주, 대구의 동창녀석들이 전화가 왔다.

한 사람은 “제주도가 어떻게 된거야?”라고 걱정스럽게 물었고.

또 한 사람은 “역시 제주도네”하고 반갑게 웃었다.

TV와 신문을 보니 알만했다.

선거 지형이랍시고 한반도 이남을 색칠했는데, 대구·경북만 빨갛고 나머지 전국을 온통 파랗게 칠해 놓았다. 아마 더불어민주당(청)과 자유한국당(홍)의 색깔로 구분한 것 같은데, 제주도는 회색(灰色)이다.

색깔도 많은데 왜 하필 회색인가하는 생각이 들어 그 사전적 의미를 보니, ①잿빛 ②‘정치적(政治的), 사상적(思想的) 경향(傾向)이 뚜렷하지 않은 상태(狀態)’를 비유(比喩·譬喩)해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했다.

그렇다면 제주도 사람은 경향이 뚜렷하지 않다는 건가.

정도전에게나 물어보면 어떨까.

알 수가 없다고 오리무중(五里霧中)이라고 할지. 아니면 한라산의 낙락장송(落落長松)이라고 할지.

하여튼 이번 선거 결과로 이제는 “당신 XX도서 왔지?”하는 시비는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남은 문제는 제주의 색깔이 과연 회색일까하는 점이다.

제주도를 회색칠한 사람들은 정말 몰라도 한참 모른다.

제주사람들은 정치적 사상적 경향이 너무나 확고하기에 6·13 같은 결과를 남겼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