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사마리아인 법
선한 사마리아인 법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6.06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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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식 제주한라대 응급구조과 교수/논설위원

[제주일보] 오불관언(吾不關焉).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는 것으로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사회가 각박해진 탓인지 다른 사람의 일에 무관심하거나 위급한 상황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심정지 환자를 심폐소생술로 살려놓았더니 나중에 갈비뼈에 금이 갔다고 치료비를 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교통사고 환자를 병원에 데려다줬다가 오히려 가해자로 몰려 곤욕을 치르는 일도 생긴다. 이렇게 남을 도와주려다 오히려 자신이 피해를 보는 황당한 상황이 자주 발생하다 보니 이런 풍토가 점점 일반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타인의 일에 무관심하거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보고도 눈치만 보며 돕지 않게 되는 현상을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라고 한다. 우리 주위에 나만 생각하고 자기에게 이로운 것만 추구하면서 남이야 어떻게 되던 상관없다고 행동하는 방관자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이에 대해 타인에 대한 구조행위를 법으로라도 강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은 데, 이 때 거론되는 것이 이른 바 ‘선한 사마리아인 법’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성경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느 유대인이 강도를 당해서 크게 다쳤을 때 유대인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그냥 지나갔지만, 유대인에게 멸시당하며 살던 사마리아인이 이 사람을 구해주었다고 한다. 여기서 유래되어 위험에 처했을 때 도와주는 행위를 하는 사람을 선한 사마리아인에 비유하고, 이 같은 선의의 구조행위를 법으로 강제하거나 보호해 주는 법률 조항을 선한 사마리아인 법(Good Samaritan law)이라고 한다. 이 법의 취지는 자신이 위험하지 않은 상황임에도 고의로 위급한 사람을 구조하지 않는 구조불이행을 처벌하기 위한 것으로, 도덕적 의무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 법은 유럽 주요 국가와 미국, 일본, 중국 등 많은 국가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다.

2016년 운행 중이던 택시기사가 심정지로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러나 당시 두 명의 승객은 비행기 시간에 늦을 것 같다는 이유로 119 신고조차 하지 않고 현장을 떠나버렸고, 결국 택시기사는 사망하고 말았다. 이후 국회에서도 구조 불이행 죄를 처벌하도록 하는 형법 개정안이 입안돼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개인의 도덕적·윤리적 행위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선의의 행동은 마음 속에서 우러나와야 하는 것이지 법으로 규정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선한 사마리아인 법의 근본 취지가 도덕적 의무를 다하지 않은 방관자를 처벌하는 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다가 잘못되었을 경우 선의의 구조자를 법적으로 보호해 주는데 의의가 있다.

현행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는 선한 사마리아인 법 정신을 담은 ‘선의의 응급의료에 대한 면책’(제5조의2) 조항을 두고 있다. 생명이 위급한 환자에게 응급의료 또는 응급처치를 제공하여 발생한 재산상 손해와 사상에 대하여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그 행위자는 민사책임과 상해에 대한 형사책임을 지지 않으며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은 감면한다는 내용이다. 물론 이 조항이 모든 선의의 구조자를 완벽하게 보호해 주지는 못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지만 선량한 마음으로 앞장서서 위험에 빠진 이웃을 돕는 사람들이 법으로 보호받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될 때 우리 주위에 선한 사마리아인들은 훨씬 많아질 것이다.

얼마 전 고속도로에서 운전자가 의식을 잃은 채 질주하고 있는 자동차를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차량으로 막아 세워서 대형 참사를 막은 운전자가 있었다.

미담이 알려지자 한 자동차 회사에서 파손된 차량 대신 새로운 자동차를 제공해주었다고 한다. 흐뭇한 소식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들의 손해를 정당하게 보상해 줄 수 있는 선한 사마리아인 법은 없는 것인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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