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잘 나가 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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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6.05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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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희 제주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논설위원

[제주일보] 지난달 전국거점국립대학 제전에 선수 자격으로 다녀왔다.

제전을 간단하게 소개하면 전국에 있는 10개 거점국립대학 교수와 교직원, 학생들이 참가해 운동도 하고 장기자랑도 하고 친목을 다지는 모임이다.

제주대학교도 이 행사에 45여 명이 참가했다.

나는 발야구와 50m 계주 종목에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평소에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 나로서는 50m 계주가 가장 긴장되는 종목이었다.

나로 인해 직접 피해를 미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종목이었기 때문이었다.

지난달 10일이 경기 당일이었는데 개인적인 바쁜 일정으로 짧은 기간에 무섭게 엄청난 집중력으로 준비해야만 했다.

엄청나게 집중했다는 것은 새벽 6시 전에 학교 대운동장에 나가 열심히 트랙을 걷고 뛰고, 밤이면 달밤에 체조한다더니 10시 이후 다시 옷이 땀으로 흠뻑 젖을 때까지 운동장 트랙을 돌았다는 뜻이다.

아무한테도 연습하고 있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몰래 연습하고 당일 날 엄청난 기량을 ‘짠’하고 뽐내고자 하는 것이 내 계획이었다.

평소 운동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던 학과 학생들을 매수(?)해 짧은 기간에 어떻게 하면 어떤 기술을 쓰면 잘 뛸 수 있는가를 틈틈이 물으면서 다녔고, 모 예능 TV에 나왔던 온갖 현란한 계주 기교를 나름 충분히 습득했다.

정작 제전 당일 날, 매주 그나마 제일 열심히 연습했던 발야구는 다른 교수들이 너무나 빼어난 기량을 발휘했기 때문에 후보 선수인 나는 공도 한번 못 찼고, 내가 빠진 덕분인지 제주대학교는 발야구 우승을 거머쥐었다.

50m 계주는 다른 대학 사람들이 몸 풀고 연습 삼아 뛰는 것만 보았는데도 기가 폭삭 죽어버렸다.

며칠 연습에도 시큰했던 무릎이 갑자기 아파왔다.

그래서 모든 운동에 발군인 발야구 주전 교수에게 대신 뛰어줄 것을 부탁했다. 실전에서 내 대신 뛰어준 교수는 내 눈에는 우사인 볼트 같았다.

내가 뛰었으면 하마터면 우리대학의 역적이 될 뻔했다.

중국 전국시대 조나라 혜문왕 때 인상여와 염파란 인물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큰 공을 세웠지만 환관의 식객에 불과했던 인상여를 높은 벼슬에 임명하자 염파는 불만이 대단했다.

염파는 인상여를 만나면 망신을 주려고 늘 별렀다.

그 소문을 들은 인상여는 염파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피했다.

인상여의 부하들이 “왜 그렇게 염장군을 피합니까?”라고 물으니 인상여는 “진나라가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와 염장군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둘이 서로 헐뜯고 싸운다면 우리나라가 곤경에 빠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염파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인상여에게 사죄했다. 마침내 인상여와 염파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생사를 같이 할 정도의 사이를 일컫는 문경지우(刎頸之友)의 고사이다.

지금 전국은 지방선거 운동으로 한창이다.

상대방이 나보다 잘한다고 내 몫을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선거일 것이다. 상대방 인격이, 정책이 나보다 훌륭하다고 50m 계주를 양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선거가 끝난 후에 상대 후보와 문경지우가 되기는 힘들어도, 상대 후보를 험담하고 끌어내리려는 시간이 있으면 상대 후보가 나보다 뛰어난 장점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파악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해서 자신의 참모진을 중용하는데 주력하면 어떨까.

염파와 인상여 같은 인재가 많아서 한국도 중국과 미국 같은 세계 강대국들이 넘보지 못할 나라가 될 수는 없는지 이번 지방 선거를 바라보면서 문득 든 생각이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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