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관계
사람의 관계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6.0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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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훈식 시인·제주어 보전 육성위원

[제주일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소통은 지정의(知情意)로 푼다. 지정의란 지덕체와 진선미와 같고 지호락(知好樂)과는 많이 다르다. 이 명제를 알면서도 남들과 소통이 요원하고, 식구끼리도 분쟁이 생기고 있으니 이 나이가 되도록 도무지 헛살았다는 자책이 앞선다.

나이 찬 외동딸이 애인이라고 소개하는데 중졸에 사기전과자이고 직업도 일정하지 않아 내심 큰일이라는 판단에 헤어질 것을 종용했지만 딸은 사랑의 쾌감에 콩깍지가 씌어 거부하는 바람에 더욱 난감할 뿐이다. 여기서 지는 지식이다. 알아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정은 아름다움을 지닌 감성이고 의는 사람의 근본을 뜻한다.

사기전과자는 이미 의를 손상시켰으므로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두려울 뿐이고, 직업이 불안정하니 정서 또한 위험한 상태가 되어 비극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는 아버지의 충고가 오히려 섭섭하다.

진선미에서 진은 참됨을 말하는 앎이고, 선은 너그러움을 뜻하는 사회 규범이고, 미는 팍팍한 삶을 위로하는 예술로 육체적인 행위나 행동도 포함된다. 표현이 미진하지만 춤이나 축구가, 붓글씨와 복싱이 예술을 창조하는 행위이므로 예술체육을 같은 문화부서로 묶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의 집안 일로, 큰아들이 성공하겠다고 물려받은 과수원을 팔고 사업을 했으나 쫄딱 망해서 혼자 객지를 떠돌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어머니는 포장마차라도 하면서 살게 천만 원을 보내주자고 제의했음에도 아버지는 그 자식 더 고생해야 제대로 된 사람이 된다고 거절했을 경우 부부간에 당연히 갈등이 생긴다. 어머니는 정을, 아버지는 의를 중요시했지만 관점이 달라서 부부사이도 답답하게 된다. 이 관점의 다름을 자신의 의견으로 관철하려고 말다툼이 벌어지는데 아내가 40년 전에 저지른 잘못을 들어 신랄하게 덤벼들자, 그런 이유로 40 넘게 달달 볶았구나 하고 맞받아쳐서 고집을 꺾긴 했지만 달달 볶았다는 평가절하가 상처가 되어 증오심을 품게 되었으니 사이는 더욱 멀어지게 된다.

돈 문제에서도 진선미 관점에 따라 사람의 관계가 다양하다. 천만 원을 빌려 달라고 했는데 그냥 주겠다는 경우도 있고, 십만 원을 일 년이 넘도록 갚지 않았더니 나를 얼마나 우습게 보았으면 기본 양심도 없이 대한다고 슬그머니 절교를 선언하기도 한다. 마음에 들 만큼 감동이 넘치면 일억 정도는 유산이거나 선물이다. 그래서 말 한 마디에 천량 빚을 갚고, 말 한 마디에 평생 원수가 되는 경우가 생기는 거다.

약속을 어긴 경우, 한 번 실수는 사세부득이 있을 수 있다고 이해하고 묵인하면서도 두 번, 세 번으로 반복되면 당하는 입장에선 단절로 치닫는다. 실수한 입장에서는 실수가 반복 될수록 상대에 대하여 죄송한 마음을 깊어져서 나중에 넘치도록 잘 하려고 하지만 깨진 거울에 강력본드를 붙인 꼴이 되어 이중인격이라는 오명을 받고 관계에서 버림받는 수순을 밟는다.

지정의를 다른 말로 하면 탐진치(貪瞋癡)가 될까? 모르면 어리석을 것이고, 욕심이 많으면 죄를 범할 것이고, 분노하면 건강과 마음의 평온을 잃게 되는 것이 세상이치이다. 지호락에서 설파했듯이 아는 것 보다 좋은 것이, 좋은 것보다는 즐기는 것이 윗길이라니까 팍팍한 세상, 너그럽게 살아야 즐기는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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