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을 생각한다
관광을 생각한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6.03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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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옥.도서출판 장천 대표

[제주일보] 초등학교 시절 추억 중 하나는 관광버스를 향해 열심히 손 흔들던 모습이다. 1970년대 초반이었으니 제주관광이 막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 무렵이었으리라. 아침 조회시간에 교장 선생님 훈시의 단골 메뉴가 관광객을 열렬히 맞이하라는 친절교육이기도 했으나 솔직히 낯가림이 심한 어린 아이에게는 부담스러운 친절 강요였다.

제주자연을 즐기기 시작한 관광객들은 막상 제주에서 먹을 게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비린내 가득한 생선국이나 날된장을 풀어만든 물회가 입에 맞을 리가 없었다. 제주사람들은 그들의 입맛에 맞춰 집간장과 된장 위주의 거무튀튀한 음식 대신 고추장과 알록달록한 양념으로 비린내를 잡아 제주향토음식이라는 이름으로 내놓았고 관광객들은 제주음식 맛에 매료됐다. 처음에는 입에도 대지 않던 토박이들이 듣도보도 못한 향토음식에 맛을 들여가는데 좀 더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제주관광은 활황을 타기 시작했다.

그때쯤에는 어린 학생들에게 친절교육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제주관광은 더 이상 고사리손들의 친절에 좌우되는 차원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많던 시절이 아니었어도 관광객에 대한 거부감은 있었다. 유명 해수욕장 주변 주민들이 여름철이면 젊은 관광객들이 반나체로 돌아다닌다고 볼썽사납다는 불만을 토로하는 기사를 접한 게 20여 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그런 불만보다는 관광산업 활성화에 대한 도민적 관심이 압도적으로 높다고 여기면서 제주는 오늘에 이르렀다.

더러 천혜의 자연 속에 생뚱맞은 관광시설이 들어선다고, 원래 주민을 떠나보낸 터전에 이국적인 관광단지가 들어선다고, 단지 유동인구에 이로운 대단위 개발을 한다고 해서 저항하는 일이 있어 왔지만 관광산업 육성은 언제나 제주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 과제로 등장해 왔다. 전년 대비 관광객 증가율은 행정 능력 평가 기준이기도 했다.

관광객이 많아서 웃은 적은 많아도 울상인 적은 없었다. 관광객이 적어서 안도한 경험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로 제주에 중국인 관광객이 갑자기 사라졌을 때 막힘이 덜한 도로를 보면서, 항공권 예약이 한결 쉬워지는 걸 오랜 만에 경험하면서 ‘이래야 제주도지’ 안도를 한 것이다.

하지만 그때도 한편으론 최근 리모델링한 게 분명한 숙박시설들이 텅텅 빈 것을 보면서, 관광업계의 속앓이를 짐작하면서 안도감과 같은 비중의 불편감이 있었다. 우리는 어쩌면 이처럼 모순된 심정에 휩싸인 채 관광지 제주도민으로 오랫동안 살아왔다. 그래서 최근 세계적 관광명소에서의 관광객 거부 바람에 유독 관심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2000년대 초반이었던가. 미국 뉴욕시민을 대상으로 뉴욕에서 가장 꼴불견을 묻는 설문 결과를 기사로 접한 적이 있다. 최고의 꼴불견이 다름 아닌 ‘관광버스 행렬’이었다. 그게 우리나라 신문에도 소개가 될 정도였으니 세계적인 흥밋거리였는데 그후로 20년 정도 흐른 지금 그 양상이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변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스페인 바로셀로나 주민들이,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주민들이 너무 많은 관광객이 문제라며 관광객 반대정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더 놀라운 것은 관광수익이 높다한들 지역에 환원되지 않는다, 관광객이 너무 몰려 주민들은 시장보기도 불편하다 등 그들의 반대 이유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는 것이다. “관광이 베네치아를 살리고 있지만 동시에 베네치아를 죽이고 있다”는 그곳 주민의 인터뷰도 우리의 심정과 똑 닮았다.

이 세계적인 딜레마가 해결될 기미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정치·사회·경제·문화 전체를 아우르는 가장 어려운 문제일지도 모른다.

아직 제주도는 이르다고 할 수 있을까. 설령 이르다고 해도 제주도를 이끌어갈 리더들이라면 이것이 문제라는 인식 차원이 평범한 우리와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투표일을 앞두고 후보들의 관광분야 공약을 꼼꼼히 살펴보는 심정이 편치만은 않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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