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왕조 수호신 모신 힌두사원, 수백년 세월에도 오롯이
옛 왕조 수호신 모신 힌두사원, 수백년 세월에도 오롯이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6.01 09: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부. 아시아 문명의 원천 신들의 나라 인도를 걷다
(43)삶의 원초적 모습을 지닌 남인도를 찾아서<2>-함피 유적지②
함피는 14~17세기 번성했던 힌두왕조 비자야나가르 왕국의 수도였다. 바위산 위 세워진 왕궁 터는 폐허로 변해 쓸쓸한 모습이다. 사진은 바위산 위 왕궁 터에서 내려다본 비루파크샤 사원 전경. 이 사원은 비자야나가르 왕조의 수호신과 시바가 함께 모셔진 곳이다.

[제주일보] 함피는 고대 인도의 대서사시인 ‘라마야나’에 등장하는 왕국 키슈킨다의 중심지로서 인도신화의 신(神) 비슈누의 7번째 화신인 라마가 다녀간 곳이랍니다.

14세기에서 17세기 사이 남인도에서 번성한 힌두왕조 비자야나가르 왕국의 수도였을 뿐만 아니라 6세기 무렵부터 성지로 여겨지던 곳으로 16세기 중반 이슬람 세력에 점령되기까지 무역으로 번영을 누렸다는군요. 언덕에 올라서 내려다보니 그 옛날 이슬람 침공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된 왕궁 터가 쓸쓸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원래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제국’이라는 뜻을 지닌 함피는 약 3세기 동안 남인도의 주요 도시였고 옛날부터 힌두교 순례의 중심이었다고 합니다. 이곳은 주로 유럽이나 일본에서 온 관광객들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찾아 볼 수 없어 가이드에게 “이곳에 한국인 관광객들은 많이 안 오느냐”고 묻자 “내가 이곳 함피를 여러 차례 왔지만 한국인 관광객은 선생들이 세 번째가 되는 것 같다. 다니기 힘든 오지여서 잘 오려고 하지 않는다”고 답합니다. 그는 “올 때 느껴서 알겠지만 교통이 어렵고 복잡한 원인도 있다”고 설명입니다. 아직까지는 함피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낯선 지역이라는군요.

과거 시장이었던 하미 바자르. 옛 가게 터에 돌기둥들이 남아있다.

바위 위에 세워진 옛 비자야나가르 왕궁 터. 다 허물어지고 앙상한 뼈대만 남아 있고 일부는 복원을 하고 있는지 곳곳에 돌무더기를 볼 수 있습니다. 인도의 다른 지역, 특히 서인도의 왕궁들이나 사원들은 대개 사암으로 건축을 한 반면 이곳의 건축물이나 사원들은 단단한 화강암으로 지어진 게 특징입니다. 아마도 이 거대한 바위산이 전부 화강암 지대이기 때문인 듯하군요. 단단한 화강암을 깎아 수평을 만들어 그 위에다 궁전이나 사원들을 지은 것을 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참 사진을 찍다가 언덕 아래 거대한 건물이 있어 조금 내려가 봤더니 건물 전체에 회색 페인트를 칠한 듯 뿌옇게 보여 새로 지은 사원인가 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아래 부분은 그냥 남아있습니다. 설명을 들어보니 그 유명한 비루파크샤(Virupaksa) 사원이라는군요. “멀리서 봤을 땐 마치 새로 지은 사원처럼 보인다”고 했더니 건물 부식을 막기 위해 칠을 해 놓은 것이랍니다.

비루파크샤 사원 정문에 있는 고푸람(힌두교 탑문).

바위산에 있는 왕궁 터를 돌아본 다음 바로 비루파크샤 사원으로 내려갔습니다. 이 사원은 입장료를 따로 내야하고 카메라를 휴대할 경우 추가 요금을 지불해야 한답니다.

비루파크샤 사원은 함피에 있는 사원 가운데 지금까지도 힌두교 의식인 ‘뿌자’가 행해지는 유일한 사원이라고 합니다. 사원 전체가 온전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고 사원의 원래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듯합니다. 어제 밤에도 수많은 신도들이 모여 있었는데 오늘도 마찬가지군요.

비루파크샤 사원은 호이살라(Hoysala) 시대 말기에 조성된 것이지만, 16세기 초 당시 이 지역의 통치자인 끄리슈나 드와 라야에 의해 오늘날의 규모로 증축됐고 이 때 비자야나가르 왕조의 수호신들도 시바와 함께 모셔졌다고 합니다. 입구에 있는 높은 탑 모양의 ‘고푸람(힌두교 탑문)’은 남인도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축 모양으로 웅장하기도 하고 외벽 벽면의 조각들이 인상적입니다.

사원을 돌아보고 나오니 정문 앞으로 폭 30m, 길이 700m 정도의 곧게 뻗은 대로가 있는데 이 길이 바로 그 옛날 유명한 함피 바자르(시장) 자리였답니다. 지금도 함피의 중심지이고 길 양쪽에는 수많은 건축물 잔해가 널려있네요. 복원을 위해서인지 발굴하다 만 석물들이 구석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 옛날 화려하게 장식한 마차들이 분주하게 오갔을 이 길. 지금은 이방인들을 태운 ‘릭샤(인력거)’가 일으키는 먼지만 날리고 있군요.

한참을 걷다보니 길 양쪽으로 돌기둥들이 세워진 것이 마치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점 건물같이 보였는데 과연 옛날 상점건물이라고 합니다. 수없이 길게 늘어서 있어 현지 주민들과 원숭이들이 더위를 피하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군요. 제주에서 출발할 때 눈 쌓인 것을 보고 왔었는데 이틀 만에 더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마침 야자수 나무 아래에서 야자열매를 팔고 있는 상인을 만나 야자수로 목을 축이고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오늘 갈 곳이 많으니 서둘러야 한답니다. 걸어서 가면 시간이 많이 걸리니 강에서 배를 타고 가자고 합니다.

코끼리 사원에 있는 코끼리 상.

남인도, 특히 첫 방문지인 함피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을 꼽으라면 바위산들입니다. 마치 어느 조각가가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를 가지고 행위예술을 한 듯 보이는 바위 무더기들이 수없이 많아 정말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어떻게 자연이 저런 형상을 이뤄놓았을까. 더욱 놀라운 것은 왕궁이며 사원들이 이런 바위산들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좁은 길을 따라가니 퉁가바드라강이 나옵니다. 배가 없어 보이는 데 강 모퉁이를 자세히 보니 둥근 모양의 바구니 같은 것이 보입니다. 대나무로 만든 바구니배랍니다. 물이 들지 않게 콜타르칠을 했는데 10명 정도 탈 수 있다고 하네요. 언젠가 베트남 사진에서 본 듯한 배는 흐르는 강물을 따라 빙글빙글 돌며 내려갑니다. 이제 이 강을 중심으로 세워진 사원들을 돌아 볼 예정입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