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행 왜 좋으세요?
제주여행 왜 좋으세요?
  • 제주일보
  • 승인 2018.05.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화경 제주국제대학교 호텔관광학과 교수

[제주일보] 소싯적 책 좀 읽었다는 이들에게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무덤 순례는 오래된 로망이다.

유럽으로 그리고 또 다시 네다섯 시간의 비행 끝에 그리스 크레타에 도착해서 찾은 카잔차키스의 무덤은 시내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성곽 언덕 위에 있다.

평소 그리스 정교회에 밋보여서인지 성당묘지도 아닌 곳에 투박한 돌무덤으로 나무십자가만 덩그마니 있다.

그리고 묘비명엔 카잔차키스가 생전에 자필로 썼다는 그리스어 세 줄!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여행자는 묘비명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마음 속 ‘두려웠을지도 모를 자유’를 하나하나 떠올려 본다.

‘용서의 언덕(Alto del Perdon)’은 제주 올레길 모델이 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대장정의 4일차에 마주친다.

남프랑스 국경마을을 출발해서 피레네산맥을 넘어 ‘별빛이 비추는 들판’인 스페인의 북서부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전체 800km를 걷는 순례의 길이다.

1189년 교황 알렉산더 3세가 산티아고를 로마, 예루살렘과 함께 3대 그리스도교 순례지로 지정한 이후 지금도 매년 10만 명 이상이 짧게는 30일, 길게는 50여일을 걷는다.

가파른 산길능선을 숨 가쁘게 올라 ‘용서의 언덕’에 서면 세찬 바람을 맞으며 너른 들판과 마주하고 있는 철제 조각품인 순례자 군상들을 만나게 된다.

여행자는 녹슨 철제조각상들 옆에 나란히 섰다가 내려가는 언덕길에서 삶의 용서와 화해를 생각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유럽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노총각 괴테가 바이마르 공국 재상의 자리까지 박차고 37살 자신의 생일파티에서 도망치듯이 새벽에 빠져나와 19개월간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남긴 3부작이 ‘이탈리아 기행’이다.

베로나의 원형극장 얘기며, 베네치아에서 곤돌라 탄 경험, 볼로냐에서 라파엘로의 ‘성 세실리아’를 봤던 감동까지.

하지만 여행을 떠난 바로 그날이 자기 삶의 새로운 시작이었고, 결국 여행이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었음을 고백하면서 ‘여행은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떠나기 위해서다’ 라는 여행의 인문학적 토대를 만들어주었다.

‘제주여행 왜 좋으세요?’ 요즘 제주를 찾는 개별 여행자들의 발걸음이 잦아졌다.

자발적 제주이민자인 필자로서는 예능과 다큐가 다르기에 ‘효리네 민박’을 보는 시선이 가끔은 삐딱하다.

그리고 어느 작가의 표현대로 제주는 타인의 공간일 때 아름답지만, 내 삶의 공간일 때는 무료하다고 느껴선지, 육지로부터의 여행자들에게 무심코 묻는다.

‘제주가 뭐가 그리 좋으세요?’

그들은 제주가 그저 좋단다.

5월에 제주를 찾은 지인은 귤꽃을 특히 좋아했다.

이른 아침 산책길에 ‘신부의 새하얀 베일같이 내려앉은 흰색 봉우리’도 눈부시지만, 해질녘 포구에서 자리물회 한 그릇하고 돌담길 걷다보면 팝콘처럼 툭 터진 귤꽃 향내가 아카시아, 치자나무 저리 가란다.

곶자왈 숲길에서 바위를 끌어안고 옆으로 길게 누운 종가시나무하며, 사철 단풍이 지는 담팔수의 진홍빛 이파리를 하염없이 보게 된단다.

그래선지 제주에 오면 성급함과 초조함과 서두름이 덜해지고, 안 보이던 게 보이고 늘 보던 게 새롭게 보인다고 한다.

금요일 퇴근길 하이힐 싣고 무작정 찾은 제주 바다에서 ‘두렵지 않은 자유’를 토닥이고, 일상의 고단함으로 만신창이가 된 채 오름에 올라 ‘자신과 화해’하며, 결국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용기를 갖고 ‘새로운 여행’을 결심한다.

제주가 크레타섬이고, 산티아고 순례길이며, 우리 모두가 괴테가 되어 좋다는 것이다.

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