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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보는 4·3 70주년…그 역사의 길을 걷다70. 제19코스(조천-김녕올레)/해동포구~솔숲 4.5㎞
제주일보 | 승인 2018.05.28
옴팡밭에 자리한 ‘순이 삼촌’ 문학비.

[제주일보]  # 너븐숭이 4·3기념관

해동마을에서 나오면 ‘너븐숭이 4․3기념관’이다. 제주4․3은 올해 70주년을 맞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 당시인 1949년 1월 17일, 단일사건으로 가장 많은 인명 희생을 가져온 북촌리 주민 대학살의 현장은 ‘위령성지’로 탈바꿈했다. 학살과 강요된 침묵, 그리고 ‘울음마저도 죄가 되던’ 암울한 시대를 넘어 이제 북촌리는 ‘진실과 화해’, ‘평화와 상생’의 새 역사로 나아간다.

세칭 ‘북촌리 사건’은 1948년 음력 12월 19일 새벽에 시작된다. 이날 마을 입구 너븐숭이 근처에서 무장대가 군 차량을 기습하여 군인 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군인들이 마을로 들이닥쳐 불을 지른 뒤, 주민들을 북촌국민학교 운동장에 집결시켜 학살을 자행하다 인근 밭으로 끌고 가 무차별 사격으로 35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이튿날에도 인근 마을로 소개된 주민들이 수십 명 희생됐다.

# 너븐숭이 4·3유적지

이곳 너븐숭이 일대는 2006년부터 국비 15억8000만원을 들여 위령비와 각명비, 기념관, ‘순이삼촌’ 문학비, 휴게소, 관람로 시설을 했다. ‘위령비 건수기’에는 사건의 개요와 함께 ‘위령비를 세우고 제단을 마련함으로써 억울하게 가신 영령들을 위무하고 평화시대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한다.’라고 새겼다.

‘순이 삼촌’ 문학비는 북촌리 사건을 세상에 알려 4․3의 참혹상과 그 후유증을 고발함과 동시에 오랫동안 묻혀 있던 사건의 진실을 문학을 통해 공론화시킨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에 대한 해설과 그 내용 일부를 발췌해 배열한 구조다. 이곳은 2008년 옴팡밭 부지를 매입하여 세운 것으로 붉은 피로 상징되는 송이 위에 비가 가로세로 불규칙하게 눕혀져 있어 당시 쓰러져간 희생자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누가 뭐래도 그건 명백한 죄악이었다. 그런데도 그 죄악은 30년 동안 여태 한 번도 고발되어 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가 그건 엄두도 안 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 군 지휘관이나 경찰간부가 아직도 권력 주변에 머문 채 떨어져나가지 않았으리라고 섬사람들은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섣불리 들고 나왔다간 빨갱이로 몰릴 것이 두려웠다. 고발할 용기는 커녕 합동위령제 한번 떳떳이 지낼 뱃심조차 없었다. 하도 무섭게 당했던 그들인지라 지레 겁을 먹고 있는 것이었다.’ -현기영 소설 ‘순이 삼촌’ 부분

# 북촌마을 4·3길

북촌리는 4․3이 진행되는 동안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마을이다.

요즘 ‘다크 투어리즘’이라 하여 ‘재난 지역이나 비극적 사건이 일어난 곳을 돌며 교훈을 얻는 여행’이 관심을 끌고 있는 시기인데, 이에 발맞추어 북촌마을에서도 ‘4․3길’을 열었다.

너븐숭이에서 출발하여 시계방향으로 서우봉~북촌환해장성~가릿당~북촌포구~낸시빌레~꿩동산~포제단~마당궤~당팟~정지퐁낭 기념비를 돌아오는 7㎞코스로 약 2시간이 소요된다.

그 중에는 마을에서 내세울 만한 역사문화유적도 섞였지만, 너븐숭이나 낸시빌레, 당팟은 대표적인 학살터고, 북촌포구와 꿩동산은 역사현장, 마당궤는 당시 주민의 은신처다.

# 북촌 환해장성과 등명대

가엾은 애기무덤을 바라보며 눈물과 피로 얼룩졌던 길을 걸어 해변에 이르렀다.

얼핏 구불구불한 환해장성이 눈에 띈다.

비록 무너지고 더러 훼손당했지만 과거 환해장성의 원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동쪽 500m 지점에도 일부 남아 복원하지 않은 채로 있어 앞으로 환해장성을 복원할 때 전형(典型)으로 삼았으면 한다.

골목길로 이어졌다가 다시 바닷가로 나온 올레길 옆 빌레에 아마릴리스가 꽃을 피웠다.

누가 심었는지 나그네에게 큰 위안이 되겠다. 이어 작은 기와집 울타리 안은 북촌마을의 본향당인 가릿당이다. 기와집으로 조성된 제장의 당신(堂神)은 ‘구짓머루 노보름한집’이고, 집 왼쪽 뒤편에 있는 당신은 ‘구짓머루 용녀부인’이다. 이 신들은 북촌마을 사람들의 삶과 죽음, 호적과 피부병, 육아, 해녀 등을 관장한다.

이어 나타나는 북촌 등명대(燈明臺), 보통 ‘도댓불’이라 부르는데 요즘으로 치면 마을 포구에 세운 작은 등대다.

고기잡이배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하기 위해 처음에는 관솔불로, 나중에는 석유등으로 불을 밝혔다고 한다.

표지석에 ‘대정(大正) 4년 12월 건립’이라 새긴 것으로 보아 서기 1915년에 세웠단 얘긴데, 4․3 당시 것으로 보이는 탄흔이 발견된다.

남아 있는 북촌 환해장성 부분.

# 북촌포구와 마을을 지나

방파제에서 멀리 육모정이 서 있는 다려도가 가깝다. 육지에서 400m 거리에 있는 다려도는 물개의 모양을 닮았다고 달서도(獺嶼島)라 표기했었다. 여가 모여 이루어진 섬은 낚시터로 유명하며 전복․소라․해삼․문어 등과 미역․톳․우뭇가사리 등 해산물의 보고이다.

포구에 세워놓은 금색을 칠한 날씬 해녀상을 보고 나서 그 아래 새긴 황요범의 시 ‘해녀’의 글귀를 되새기며 나무로 만든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거기는 해안누리길인 ‘함덕․북촌 마을길’의 일부분이자 4․3때 풍랑을 피해 이 포구로 들어오던 우도지서 경찰관 2명이 목숨을 잃은 역사의 현장이다. 그 때를 지켜보았을 물통은 여전히 그대로다.

생각 같아서는 선사유적인 ‘북촌 바위그늘 집자리’와 4․3때 북촌리 민보단원 24명이 희생당한 ‘낸시빌레’를 들르려 했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 생략하고, 일주동로를 건너 ‘서남동’으로 들어섰다. 새로 지어 정원을 아담하게 꾸민 집들이 여러 채 보인다.

밭에는 보리를 벤 곳이 있고, 양파도 여물어간다. 상동나무가 많이 보이는데 열매는 벌써 물러가고, 얼마 없어 산딸기의 계절이 시작될 것이다. <계속>

<김창집 본사 객원 大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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