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처럼 큰 눈’이 아니어도…
‘하늘처럼 큰 눈’이 아니어도…
  • 제주일보
  • 승인 2018.05.27 17:36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주일보] ‘산은 가까이 있고 달은 멀리 있으니 달이 작게 느껴지는가/ 사람들은 산이 달보다 크다 말하네/ 만약 하늘처럼 큰 눈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산이 작고 달이 더 큰 것을 볼 수 있을텐데.

(山近月遠覺月小 便道此山大於月 若人有眼大如天 還見山小月更闊).’

명나라 시인 왕양명(王陽明,1368~1661)이 산에서 달을 보고 읊은 ‘폐월산방시(蔽月山房詩)’다. 가깝고 먼 근원(近遠)에 대한 인식 편향(偏向)을 잘 묘사하고 있다.

인식의 편향은 우리 주변 곳곳에서도 나타난다. 가장 흔한 게 확증편향(確證偏向)이다. 자신의 선입관을 뒷받침하는 근거만 수용하고 유리한 정보만 선택하면서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이다. 선거판이라고 다르지 않다.

정치적 성향에 따라 호불호나 찬반 주장이 그렇게 나뉜다.

▲우리 사회는 이런 집단 확증편향 증후군을 앓고 있다.

선거 이슈를 보는 눈이 진영논리에 갇혀 청맹과니가 되는 일이 얼마나 허다한가.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또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을 사실로 둔갑시킨다.

이렇게 되면 ‘사실’은 의미를 잃어버리고, 사실 뒤에 숨겨져 있는 진실은 더욱 가려진다. 이런 확증편향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항상 편가르기와 저주의 주문(呪文)이 그칠 날이 없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비이성적인 행동들이 지식의 깊고 얕음, 학력의 고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나타나고 있다.

어느 사이엔가 ‘인간은 매우 이성적이며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라는 오래된 상식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다.

오히려 ‘인간은 고정관념과 편견에 쉽게 휘둘리는 존재’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는 것만 같다.

▲심리학자가 재미있는 실험을 했는데, 커피를 내린 다음 두 개의 컵에 나누어 담았다.

즉 같은 커피를 두 개의 컵에 나누어 담고 맛을 보게 했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실험 참여자들은 각각 맛이 다르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이쪽 커피가 다른 쪽 커피보다 맛이 다른 이유를 장황하고 그럴 듯하게 설명까지 덧붙였다.

사실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두 컵(A, B)의 커피는 같은 것이므로 맛을 보았을 때 혀가 느끼는 것은 ‘같다’라고 나와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즉, ‘A커피 보다 B커피 맛이 더 좋다’라고 판단하는 순간, 뇌는 혀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를 무시하고 그 이유를 그럴 듯하게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사실보다 내가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 실험이다.

이 실험을 근거로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결정한 후에, 이유와 합리성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주장이다.

▲6·13 지방선거판을 보자.

일단 ‘A후보가 좋다’라고 결정하면 그 이유를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동일한 성향의 사람들과 급속히 친밀해지면서 정보를 공유하고 믿음을 강화시켜 나간다. 이 과정에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의견이나 주장을 무시하거나 그 가치와 신빙성을 평가 절하한다.

심하면, 그런 사람의 과거 행적과 직업, 학력, 말실수 등의 부정적인 사례들을 통해 ‘이런 사람이니, 그의 말은 믿을 수 없다’라고 떠벌린다.

이성이 설 자리는 없어지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궤변들이 상식처럼 통용되는 비상식적인 분위기가 형성된다.

만약 논리적으로 승산이 없을 것 같으면, 인신공격이란 무기를 꺼내든다. 논쟁의 핵심은 사라지고, 상대방의 과거 흠결들을 공격함으로써 상대방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한다.

선거가 보름 정도 남았다.

벌써 집단 광기(狂氣)가 보이기 시작했다.

각 후보 진영은 요언(妖言)과 극언(極言)으로 대중의 귀와 눈을 자극한다.

하지만 무엇이든 극단과 치우침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하늘처럼 큰 눈’이 아니어도 산과 달의 크기 정도는 구분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제주일보 기자  cjnews@jejuilbo.net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 다니엘 2018-05-28 07:24:15
하늘처럼 촘촘한 그물은 아니더라도
작은 고기라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시민들이 감시하며 투표권을 행사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