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하고도 한나절 여정 끝에
석양 속 옛 왕궁을 마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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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5.25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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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아시아 문명의 원천 신들의 나라 인도를 걷다
(42)삶의 원초적 모습을 지닌 남인도를 찾아서<1>-함피 유적지①
건축물을 지탱하는 커다란 돌기둥들이 그 옛날 비자야나가르 왕국의 영화를 말해주는 듯 하다.

[제주일보] 인도는 고된 여행지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 곳 일수록 도전과 영감, 혼돈을 한꺼번에 주기도 하죠.

빈곤이 눈앞에 펼쳐지고 관료적 절차는 성인의 인내심도 시험할 정도인 나라 인도. 서인도를 거쳐 그해 8월 북인도를 다녀오면서 ‘이 나라는 그냥 구경하러 가는 곳이 아니다’라는 것을 느끼게 됐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저마다 다른 경험을 하기 때문에 정의를 내리기가 불가능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한 것은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인도란 나라를 절대 잊지 못할 것이란 점입니다.

이런 인도를 다시 찾았습니다. 1월 제주에 폭설이 내리면서 제 미술관 운동장에는 눈이 가득 쌓였습니다. ‘저 눈이 언제 다 녹을까’하고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한참을 바라보고 있는데 스마트폰에서 요란스런 소리가 들려옵니다. 지난 10월에 계획한 남인도 여행의 일정이 확정됐고, 비행기표 구입까지 끝내 2월 20일 출국한다는 소식입니다.

언제나 여행소식은 어릴 때 소풍가는 기분이죠. 메일을 받고 아직도 날짜가 많은데 난데없이 마음이 바빠집니다. 이런 제 행동을 본 집사람은 “처음 가보는 곳도 아닌데 웬 소동이냐”고 나무랍니다. 다른 여행 때보다 가슴이 설레 ‘내가 왜 이러나’ 싶을 정도로 출발 시간까지 잠시도 맘을 놓을 수가 없었답니다. 혹시 예약된 비행기가 날씨 때문에 출발을 못하면 어떻게 하지 등등…. 아무튼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까지 마음이 초조했습니다.

유적지 내 한 건축물로 ‘코끼리 신전’이라고 불린다. 돌기둥에 다양한 조각들이 새겨져 있어 눈길을 끈다.

마침 아들 영석이가 친구들과 일본에 유학을 간 친구를 만나러 간다며 비행기를 같이 타고 서울까지 동행했습니다. 아들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서울을 향하는 것도, 동시에 여행을 떠나는 것도 처음이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서울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일찍 출발해 오전 5시30분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인천공항을 떠나 중간 경유지인 태국 방콕에 도착하니 오후 1시30분. 인도 벵갈루루로 가는 비행기는 오후 8시50분이라 7시간을 공항에서 버텨야 합니다. 여행경비를 최대한 아끼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군요. 기다리고 기다리다 오후 8시50분 출발해 오후 11시30분 드디어 인도 벵갈루루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입국심사는 받느라 다시 1시간이나 소요되는군요. 인도의 입국심사는 성직자도 참기 어려울 만큼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지문을 찍는데 몇 번씩, 심지어는 물로 손을 씻고 다시 지문을 찍어야 하는 등 짜증이 말도 아니죠. 일행들은 ‘IT 선진국 인도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들입니다. 그런데 제 차례가 되자 어쩐 일인지 여권을 보자마자 그냥 통과하라네요. 별일도 다 있습니다. 여하튼 짐을 찾고 밖에 나오니 오전 5시30분입니다. 인천공항을 찾은 게 어제 오전 5시30분이니 24시간 만에 남인도 벵갈루루의 땅을 밟은 셈입니다.

‘인도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벵갈루루는 데칸고원 남부 산지의 해발고도 950m 지점에 위치했다는 현지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숙소에 당도했습니다. 늦은 잠을 막 들려는 데 무슨 일인지 밖에서 난리법석이네요. 현지인인지 관광객인지 모를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고 싸움을 하는 바람에 그나마 몇 시간 잘 수 있는 시간마저 빼앗긴 기분입니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이번 여행 첫 목적지인 함피를 가기 위해 비몽사몽 버스에 올랐습니다. 지금 출발해야 차도 안 막히고 저녁시간에 도착할 수 있답니다. 하루 종일 차에서 시달려야 할 것 같군요. 벵갈루루 시가지도 어느 도시처럼 차량이 붐벼 도시를 빠져나가는 데만 1시간이 넘게 걸리네요.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많은 화물차량들이 도로에 줄지어 있습니다. 이 화물차들은 인도 각 지역으로 가는 차량들이라는데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어 우리가 탄 버스가 화물차량 사이를 위험스럽게 추월하면서 달려갑니다.

인도 함피의 비자야나가르 왕국 유적지. 바위산 위에 세워진 이 유적지에서 바라본 일몰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현지인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일몰을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어찌어찌 겨우 함피에 도착하니 해가 기울기 시작합니다. 함피 왕궁터의 일몰이 장관이라고 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앉아 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는 이제야 도착했으니 언제 사진을 찍어야 할지 걱정입니다.

헐레벌떡 바위산을 올라 사진을 찍고 있지만 금방 해가 져버려 정말 아쉽네요. 가이드에게 “내일 다시 이곳에 오느냐”고 물었더니 “다른 가볼 곳이 많아 올 계획이 없다”고 합니다. 무척 아쉬워 “그럼 숙소에서 이곳까지 얼마나 떨어진 곳이냐. 내일 새벽 일찍 왔다 가면 안 되냐”고 묻자 알아서 하랍니다.

다음 날 종일 차에서 시달려 피곤한 몸이지만 새벽 일찍 일어났습니다. 어제 왕궁터를 다시 찾기 위해서죠. 그런데 날씨가 엉망입니다. 가봐야 사진 찍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포기하고 로비에 앉아있는데 식사를 마친 가이드가 다가와 어제 그곳으로 간다는군요. 그것도 제가 하도 원해서 가주는 것이라고 생색입니다. 이러든 저러든 고맙긴 하죠.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차를 타고 다시 바위산 위에 세워진 환상적인 유적지를 향합니다.

거대한 화강암 언덕에 세워진 수많은 궁궐과 사원들이 허물어진 채 뼈대만 남아있다.

비자야나가르 왕국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유적지는 비록 폐허지만 아름다웠습니다. 일행들이 설명을 듣는 틈을 타 단숨에 바위산을 올라 어제 못 본 비자야나가르 왕조의 옛 왕궁터를 찾았습니다. 지금은 폐허가 돼 뼈대만 남았지만 그 현장을 열심히 사진에 담았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인도의 옛 궁궐 대부분은 바위산에 세워졌지만 이곳은 마치 한 덩이 바위산에 여러 개의 궁궐과 사원을 세운 것 같습니다.

함피 일대에는 이곳 말고도 곳곳에 수많은 궁궐터와 사원들이 남아 있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고 합니다. 앞으로 이틀간 이 일대의 유적들을 돌아본다니 큰 기대를 해 봅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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