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상생이 위협받는 예루살렘
평화와 상생이 위협받는 예루살렘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5.22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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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철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논설위원

[제주일보] 최근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에 따른 한반도의 비핵화와 종전에 대한 기대, 그리고 곧이어 가시화될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로 한반도의 주민은 들떠 있다. 항간에 회자되듯 정녕 ‘봄은 온다’에 걸맞는 훈풍이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불고 있다.

그런데 지구의 또 다른 반대편의 상황은 전혀 딴판이다. 최근 외신에 따르면 이스라엘 건국 70주년을 기념해 지난 14일 미국은 이스라엘의 수도 텔아비브에 있던 자국의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했다.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범이슬람인들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것으로 피의 복수와 저항을 선언했으며, 범이슬람권 정상들은 긴급 회의를 소집해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팔레스타인과 범이슬람권의 입장은 아주 간명하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영토에 귀속된 장소가 아니므로 이스라엘만이 배타적으로 점유하는 성지도 결코 아니다. 무엇보다 예루살렘은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성지로서 국제법상 이스라엘은 물론 팔레스타인을 포함해 어느 일방의 영토로 귀속되지 않는 곳으로 어느 특정한 정치 및 종교 세력이 일방적으로 점유하는 곳이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루살렘의 정치종교적 장소성을 미국과 이스라엘은 일방적으로 무시한 채 이 지역의 첨예한 이해 당사자들과 긴밀한 사회적 협의와 토론 없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중동 이해관계만을 관철시키는 파행을 저지른 셈이다. 이와 관련해 자칫 간과하기 쉬운 것은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은 이 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영구 집권을 사실상 묵인하는 것에서 한층 나아가 승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정치적 성격을 갖는다. 이것은 대단히 심각한 정치적 문제를 야기한다. 아울러 이것은 한반도와 결코 무관하지 않은 역사적 성찰로 우리를 안내한다.

지금부터 70년 전 유대인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그토록 열망하던 자신들의 나라 이스라엘을 건국했다. 그 과정에서 유대인은 주도면밀한 계획 아래 오랫동안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을 추방시킨다. 특히 주목할 것은 1947~1949년 동안 이스라엘은 ‘인종 청소’ 작전을 수립해 실행하였고, 그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주거지역은 송두리째 빼앗기고 아예 삶의 근거지 자체가 완전 파괴돼 말 그대로 잃어버린 마을이 속출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 건국 기념일 바로 이튿날을 ‘나크바의 날’, 즉 ‘재앙의 날’로 부르면서 이스라엘의 반인간적 반인류적 범죄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인종 청소 작전은 1948년 가을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

문득, 팔레스타인의 ‘나크바’와 제주4·3이 겹쳐진다. 1947년 3·1 시위가 도화선이 돼 1948년에 무장봉기한 4·3항쟁은 미군정의 지배 아래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에서 무자비한 폭압 속에서 대참사를 겪지 않았는가.

결국 제주의 엄청난 재앙을 희생양 삼은 채 한반도는 미국 주도로 진행된 38도선 이남으로 국한된 분단된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다. 이후 한반도는 분단체제 아래 전쟁의 위협이 상존하는 전세계의 분쟁 지역으로 남아 있게 된다. 팔레스타인의 ‘나크바’ 또한 매우 흡사하다. 팔레스타인의 엄청난 희생의 대가로 이스라엘은 건국됐고, 이 지역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및 범이슬람권의 대립 갈등으로 분쟁이 가실 날이 없다.

제주4·3과 팔레스타인의 ‘나크바’의 기억투쟁이 공유하고 있는 점이 있다면, 어느 일방이 그들만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것은 평화와 공존의 가치와 무관한 패권의 야욕을 드러낸, 결국 끔찍한 폭력의 사위에 갇힐 따름이다. 제주4·3과 팔레스타인의 ‘나크바’는 그래서 인류의 평화와 상생을 위한 반면교사로서 손색이 없다. 그래서일까. 평화와 상생의 가치를 헤치는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이 4·3과 나크바의 가르침을 외면해서는 곤란하다. 아울러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한 폭력이 용납될 수 없도록 국제사회는 온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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