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라늄과 어머니
제라늄과 어머니
  • 뉴제주일보
  • 승인 2018.05.15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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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희 시인

[제주일보] 가끔 뭔가에 빠져 지낼 때가 있다.

지인 집 마당에서 잘라온 제라늄을 화분에 심었더니 잘 자라주었다. 과연 어떤 색의 꽃을 피워낼지 궁금해진다. 물을 주며 봉오리를 맺고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동안 다양한 색깔의 꽃을 상상하니 설렘으로 가득하다. 그렇게 심어 가꾼 제라늄이 드디어 꽃을 피웠다. 새색시 같은 분홍색 꽃이다. 그 후로 더욱 제라늄에 관심이 쏠리고 손길이 간다.

요즘은 제라늄에 매료되어 지낸다. 특유의 향기 때문에 집안에 벌레가 없다는 꽃집 주인의 설명도 좋았지만 메마른 감성을 흔들며 나를 유혹한 건 꽃말이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아련하면서도 달콤하게 느껴지는 그 꽃말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입가에 미소 가득 담고 색깔별로 샀더니 내가 키운 제라늄과 함께 아파트 베란다가 환하다.

어버이날이 다가오는지라 우리 자매들은 어머니를 모시고 식사를 하기로 했다.
제주도에 사는 딸들 넷이서 겨우 일정을 맞추고 시간을 내어 밥을 먹기로 했다. 어머니를 모셔 왔다. 약속된 시간을 기다리며 하루에 한 잔만 마신다는 봉지커피를 타느라 주방에 있는데 저만치서 목소리가 들린다.

“잘도 고운 게, 이 꽃 이름이 뭐고?” 깜짝 놀랐다. 나는 어머니가 꽃을 싫어하는 줄 알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자식들이 반대에도 아랑곳 않고 텃밭과 마당에 있던 나무들을 다 잘라내셨다. 아버지가 애지중지 키우던 비자나무랑 삼단으로 멋을 내던 향나무, 봄이면 불 밝혀 마당을 환하게 했던 산당화도 당신 손으로 다 잘라내셨다. 그 자리에 두말할 나위 없이 채소를 심고 농작물을 심어 가꾸셨다.

커피 잔을 손에 쥐고도 연신 눈길은 베란다에서 떠나질 않는다. 어머니도 꽃을 좋아할 수 있는 여자였음을 왜 생각 못 했을까? 사는 게 여유 있었더라면 아버지가 키우던 꽃과 나무를 당신 손으로 자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꽃보다는 당장 자식들 입에 들어 갈 나물이 필요했을 테고 자투리땅이어도 보기 좋은 나무보다는 쪽파나 마늘을 심어야 하는 사정을 왜 이해하지 못했을까.

- 엄마! 평대에도 이 꼿 사당 싱거주카?

- 엇다, 나가 보민 얼메나 본덴

- 무신 소리우꽈? 백세인생인디 오래 살아사주마씀

- 벡 보름에 똥칠하도록 오래 살아지민 어떵하코

- 그걸랑 그때 뒈영 생각헤 보게마씀

- 맞다. 사름 목심은 토란잎에 이슬이렌 해신디

오월이다. 다들 카네이션을 부모님 가슴에 달아드린다. 나는 이 기회에 어머니 눈길 가닿는 자리에 제라늄 몇 그루 심어 드린다. 이런다고 어머니가 꿈꾸었을 무지갯빛 청춘을 조금이나마 되돌려 드릴 수 있을까. 잠시나마 환한 미소지을 수 있는 소녀 적 감성을 느껴보시면 좋겠다. 어머니의 마음에도 칙칙하고 무거운 짐 내려놓고 발그레한 꽃물이 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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