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랑의 미·중관계와 한국의 선택
격랑의 미·중관계와 한국의 선택
  • 뉴제주일보
  • 승인 2015.11.17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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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인택 고려대학교 교수/전 통일부장관

남중국해의 군사적 긴장의 파고가 높다. 미국이 남중국해에 건설하고 있는 중국의 인공섬 상공으로 B-52 전략폭격기를 보내고, 중국은 동중국해의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부근으로 해양순시선이 아닌 구축함을 파견하는 등 미·중은 서로 ‘군사적 시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러한 것으로 당장에 미·중 간에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지만 이것이 주는 국제정치적 함의는 매우 크다.

미·중의 이러한 행보의 핵심에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퇴조’와 ‘중국의 부상’이라는 21세기 국제정치 변화의 큰 흐름을 반영한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이에 대해 ‘아시아 재균형 (rebalancing)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이는 미국의 군사력을 동아시아에 보다 집중시키고, 동맹을 활성화해 이 지역에서 중국의 부상을 적극적으로 막는다는 전략이다.

중국은 이에 맞서 군사현대화 정책을 맹렬히 추진해왔다. 경제적 도약을 바탕으로 전략적 측면에서도 그간의 조심스런 태도에서 벗어나 보다 과감한 굴기(屈起)로 나아가고 있다. 중국의 군사현대화는 특히 지난 10여 년간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여 왔다. 국방비는 매년 10% 이상씩 증가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군사비 지출국가가 됐다. 뿐만 아니라 군사무기에 있어서도 급성장해왔다. 항모를 보유하고, 전략핵잠수함, 스텔스폭격기, 공중급유기, 전략미사일 등에 있어서 한층 업그레이드된 전력을 보유하게 됐다.

이로써 중국은 과거의 연안방어 위주 전략에서 대양을 지향하는 보다 공세적인 전략을 추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와 더불어 중국의 대외전략도 기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이것이 바로 중국의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정책이고 ‘일대일로(一帶一路)’정책이다.

시진핑 정부는 신형대국관계의 표방으로 미국과 대등하게 서고, 일대일로정책을 통해서 아시아에서 패권국가로 성장하겠다는 것이다. 일대일로 정책은 대륙에서는 중앙아시아로 서진(西進)하는 정책이다. 해양에서는 남중국해를 거쳐, 말라카해협, 그리고 인도양을 건너 유럽까지를 연결하는 남진(南進)정책이다.

이러한 해양실크로드의 건설은 아시아의 거의 모든 국가들과 이해관계가 상충한다. 일본, 베트남, 필리핀은 물론이고,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및 인도가 여기에 포함된다. 그러나 당연히 가장 큰 핵심은 아시아·태평양 국가를 자임해온 미국이다.

이러한 변화의 와중에 한국이 서 있다. 지난 9월 16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 후 공동회견에서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중국이 국제규범이나 법을 준수하지 않으면 한국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언급한 것이 바로 이러한 동아시아 국제지형의 변화에 따른 미국의 속내를 표현한 말이다.

한·미동맹 사이에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했다는 자체가 이례적이다. 해석하기에 따라 미국의 불만의 표현으로도 볼 수 있는 사안이다. 한국이 이제 드디어 시험대에 올랐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에 대해 지난 4일 말레이시아에서 개최된 제3차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회의에서 한민구 국방장관은 “남중국해에서의 항해와 상공비행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동아시아 국제정치의 격랑(激浪) 속에 한국이 높은 파도를 타고 있다는 여실한 반증이다.

미·중의 격돌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한국의 선택이 어려워진다는 것이 우리가 직면한 ‘불편한 진실’이다. 그러나 국가로서 선택해야할 때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또한 불편한 진실이다.

다만 그 선택은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굳건히 하면서 동시에 중국과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극대화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한 선택이 아무리 어려운 길이라 하더라도 그 길을 가지 않을 도리는 없다.

하나의 위안이 있다면 격랑의 높은 파도를 우리만 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초강대국이라는 미국도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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